숲의 기억

자연의 사색 3부작 1부

by 연월랑

나는 숲이다.

해가 떠오를 때마다 내 몸은 숨을 쉬고,

달이 떠오르면 그 숨결은 조용히 식는다.


바람은 내 귀가 되어 세상의 속삭임을 전하고,

새들은 그 소식을 멀리까지 옮긴다.

작은 곤충들은 흙 위에서 시간을 엮는다.


그 모든 움직임 속에서

나는 인간의 계절을 보았다.

사랑하고, 웃고, 기다리고, 떠나는 그들.

그들의 이야기는 바람처럼 내 안을 지나갔다.




봄이 왔다.

바람이 산등성을 넘어와

벚꽃을 흔들었다.


교정의 햇살은 아직 서툴렀고,

꽃잎이 책 위로 내려앉았다.

그의 손끝이 그것을 조심스레 털어주었다.


짧은 숨, 잠깐의 미소.

그 순간 바람은 두 사람의 뺨을 스쳤다.

만남은 언제나 바람처럼,

조용히 문을 연다.


그때, 바람이 잠깐 멎었다.

햇살이 숨을 고르는 사이,

두 사람의 시간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고요 위로 새 한 마리가 지나며

봄의 소리를 흩뿌렸다.




해가 머리 위에서 부서지고,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그늘에 내려앉았다.


돗자리 위 김밥 한 줄,

분수의 물방울,

매미 울음이 공기 속을 가득 채웠다.


“한 줄만 더 먹을래요?”

“욕심은 금지예요.”


그들의 웃음이 햇빛에 닿아 반짝였다.

잠자리가 그 웃음 위로 스쳐 지나갔다.

사랑은 여름처럼 잎을 넓혔다.

햇살과 바람 사이에서,

서로의 얼굴을 닮아갔다.


웃음이 가라앉자,

그늘이 잠깐 깊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사랑은 더 짙어졌다.


숲은 그 웃음의 향기를 품었다.




해가 기울자 달이 떠올랐다.

은행잎이 바람에 들썩이고,

길 위에 노란 물결이 출렁였다.


한 여자가 그 아래 서 있었다.

눈빛은 멀리,

손끝은 잎사귀처럼 떨렸다.


멀리서 군복 차림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달빛이 그 둘 사이를 비추었다.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돌아왔네요…”


잎들이 포옹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달빛이 물결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기다림은 길었으나,

사랑은 다시 돌아왔다.


시간은 옆으로 흘렀고,

그 순간만 길어졌다.


숲은 그 포옹의 빛을 흙 속에 묻었다.


시간은 다시, 하얀 숨을 준비했다.

바람은 찬빛으로 바뀌고,

달빛은 새벽을 향해 고요히 걸어갔다.




새벽바람이 하얗게 얼어붙고,

자작나무 껍질 위로 눈발이 내렸다.


두 줄의 발자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고,

기적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그녀는 그 소리를 따라 눈길에 섰다.

“춥네요… 그래도 여기 있으면 덜 외로운 것 같아요.”


그 말 위로 한 마리 까치가 날아올랐다.

달빛이 남은 눈발을 비추고,

하늘은 조용히 닫혔다.


이별은 차갑지만,

흙 속에선 이미 미세한 온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숲은 그 발자국을 눈 아래 오래 품었다.




계절은 돌았다.

꽃잎은 흙으로,

향기는 바람으로,

잎은 빛으로,

눈은 물로 돌아갔다.


나는 숲이다.

해와 달, 바람과 새,

모든 생명이 내 안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들은 와서 사랑을 남기고,

떠나며 이름을 바람에 흩었다.

나는 오래된 몸으로

그 순환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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