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마음

자연의 사색 3부작 3부

by 연월랑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멀리서 보면 고요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셀 수 없는 목소리들이 출렁인다.

나는 그 소리를 안다.
숲에서 흘러온 기억,
바람이 데려온 그리움,
모두 내 품으로 흘러 들어온다는 걸.



어떤 날엔 해변가에서
두 사람이 바람에 등을 맞댄 채 앉아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언젠가 이 바다를 함께 보자던 약속,
이젠 혼자라도 지켜야겠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없었지만,
파도가 밀려와 발끝을 적셨다.
나는 그들의 숨결을 품었다가
조용히 되돌려주었다.

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양을 바꾸어 남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 파도는 달빛을 껴안고,
소금 냄새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삼킨다.
멀리서 누군가의 웃음이 흘러와
모래 속 조개껍질을 울렸다.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받아 삼킨다.
바다는 늘 들어주는 쪽이니까.



언젠가 그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손에는 낡은 봉투 한 장.
그 안엔 오래된 사진과 짧은 편지가 있었다.
그는 조용히 모래 위에 앉아
사진을 파도 속에 띄워 보냈다.
나는 그 종이조각이 젖지 않게 살짝 감싸주었다.

용서란, 서로를 덮는 물결과도 같다.



밤이 깊어지면 달이 내 어깨에 앉는다.
그 빛은 모든 기억을 드러내는 듯하면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빛 아래에서
오늘의 파도를 하나씩 되감는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들,
고백과 후회, 침묵과 눈물.
그것들이 다시 고요해질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밀려가고, 되돌아온다.

달빛이 파도를 덮고,
바람의 숨결이 사라질 즈음—

새벽이 밝아오면
모든 소리는 다시 잠이 든다.
모래 위엔 새 발자국만 남고,
나는 또다시 숨을 고른다.

바다는 기억한다.
그러나 오래 붙잡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물처럼 흘러야 한다.
그러나 흘러간다는 건 잊힌다는 뜻이 아니다.
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양을 바꿔,
다시 생명을 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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