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머묾이 교차하는 자리
처음, 내 이름은 ‘서울역’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를 ‘경성역’이라 불렀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젊었고,
기차는 짧은 숨결로 도시의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서쪽으로 향하던 바람은
내 몸을 스치며 먼지와 햇빛을 함께 데리고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며 철로는 멀리 뻗어갔다.
선로 위에는 곡식의 냄새와 기름의 냄새,
철이 부딪히는 진동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벽돌 속에 품고,
차륜이 지나갈 때마다
내 몸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의 공기는 차가웠고,
빛은 먼지를 타고 천천히 흔들렸다.
붉은 벽돌이 쌓이던 날,
망치의 울림이 내 안 깊숙이 닿았다.
기차의 숨결이 내 심장이 되었고,
그 박동엔 이미 그림자가 섞여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유리와 철로 감싸인 몸을 얻었다.
새벽마다 불빛이 지붕 위에서 부서지고,
그 반사된 빛결이 내 몸의 금속선을 따라 떨렸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나를 깨웠고,
그 소리마다 시간이 새로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붉은 벽돌은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유리벽 아래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유리 천장 너머로 햇빛이 번졌다.
플랫폼 위에는 늘 같은 발소리가 겹쳐 흘렀다.
손끝에 닿은 커피의 김,
무심히 스치는 인사,
아직 식지 않은 말들이 공기 속을 맴돌았다.
기차는 숨을 고르고,
안내 방송이 고요를 갈랐다.
“곧 출발합니다.”
그 말끝마다 짧은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아침의 공기가 차가운 시간,
유리문을 열자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햇빛은 플랫폼 위로 길게 눕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서로 겹쳐 흘렀다.
기다림 속의 발소리와
떠나려는 마음의 고동이 얇은 공기를 흔들었다.
손끝에 닿은 따뜻한 종이컵,
그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누군가의 웃음이 스피커 아래서 번졌고,
그 온기가 공기 속에 머물렀다.
떠남과 머묾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바람이 머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기울 무렵,
플랫폼의 공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로
가방의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낮게 흘렀다.
차창에 맺힌 김이 손끝에 닿자
미묘한 온도가 되살아났다.
“다음에는 더 오래 있을게.”
작게 흘린 말이 소음 속으로 섞여 사라졌다.
불빛이 천장에 반사되고,
그 빛의 결이 얼굴을 스쳤다.
돌아옴은 끝이 아니라,
조용히 다시 살아가려는 약속이었다.
비가 내리면 지붕이 낮게 운다.
물방울이 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빛을 따라 부서졌다.
기름 냄새와 젖은 쇳내가 공기 속에 섞이고,
그 냄새가 스친 자리마다
사람들의 체온이 미세하게 남았다.
“이번 열차는 곧 출발합니다.”
그 목소리 아래에서 누군가는 가방을 닫고,
누군가는 손을 흔든다.
그 손끝의 떨림이 바람에 닿을 때,
나는 그 온기를 내 안에 받아 넣는다.
기차가 떠나고 또 들어올 때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따라 숨을 고른다.
떠남이란,
언젠가 돌아오기 위한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새벽, 불빛은 하나둘 꺼지고
플랫폼엔 고요가 내려앉는다.
기차의 그림자가 벽을 스치며 사라지고,
어딘가에서 첫 새가 울 때
하루가 다시 열린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여전히 머문다.
발자국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 온기는 공기 속에서 아직 식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 흐름을 품는다.
그리고 바람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내 안을 스쳐 지나간다.
이 도시의 길들은 모두 나로 이어지고,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내 안을 지나간다.
불빛이 남아 있는 한,
이곳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바람은 오늘도,
그 불빛의 끝에서,
누군가의 등을 조용히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