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루의 바람

시간의 결이 남긴 온기

by 연월랑

아침 햇살이 낙산의 성루 위로 번졌다.
돌의 표면은 아직 밤의 냉기를 품고 있었고,
그 차가움이 손끝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돌 위에 손을 얹자,
거친 결 사이로 오래된 체온이 은근히 번졌다.
세월은 돌의 틈마다 숨을 쉬고 있었고,
그 시간은 아직 따뜻했다.



돌 하나, 돌 하나마다 다른 결이 있었다.
어떤 것은 닳아 있었고,
어떤 것은 새로 쌓인 듯 매끈했다.
손끝은 그 둘의 경계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과거의 손길과 현재의 손길이
이 성루를 함께 세운 듯한 기척이 스며 있었다.
잠시, 돌 틈 사이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스치는 듯한 미세한 떨림이 흘렀다.



바람이 불었다.
돌의 틈새로 흐른 공기가 낮은음을 냈다.
그건 마치 돌이 숨을 쉬는 듯한 소리였다.
귀보다 먼저 피부가 그 소리를 받아들였다.
공기의 결이 얼굴을 스치며
시간의 온도를 조용히 건네주었다.
그 온도는 지금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숨결처럼
느린 파동을 품고 있었다.



햇살은 점점 높아지고,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돌의 차가움과 공기의 따뜻함이
서로 닿으며 새로운 숨결을 만들고 있었다.
그 경계에서 오래된 시간의 체온이 천천히 깊어졌다.
그러나 그 온기 속엔
다 식지 않은 슬픔의 잔열이 옅게 머물렀다.



해가 지며 빛이 돌 위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그 빛은 오래된 손길처럼
성루의 표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다시 돌담에 손을 올리자,
표면은 차가웠지만
그 안엔 여전히 미세한 숨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숨결은 바람에 섞여 조용히 스며왔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은 떠나갔지만,
그 결은 아직 피부에 닿아 있었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남아
도시의 불빛 너머 바람의 그림자가 흐르는 듯했다.

말은 사라졌지만,
바람 속엔 아직 온기의 결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온기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 물음만이 남은 채,
성루의 밤이 천천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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