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땅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흙 속의 어둠을 품은 채
묵묵히 자라났다.
나무는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되
그 하늘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햇살의 일부만 빌려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주었다.
누군가는 그 아래서 쉬었고,
누군가는 잎 사이의 빛을 지나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바람이 남긴 온도만 기억했다.
모든 계절이
늘 온기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그늘을 내주었지만
아무도 머물지 않던 날도 있었다.
그때 나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쪽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렸다.
겨울이 오면 가지를 비웠다.
남은 잎은 모두 바람에게 건넸다.
떠남 또한
자연의 일부라 여겼다.
봄이 오면 다시 푸르러지고,
여름엔 숨을 내쉬고,
가을엔 빛을 덜어내며,
겨울엔 고요를 배웠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계절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도 그렇다.
세상을 다 알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고
바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겸허란 낮춤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일이다.
받은 온기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일.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기억하는 길.
그 길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지만,
끝내 사람을 남기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