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짜가 잡혔다.

회복의 염원

by 서연우


사고 5일째,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가해자에게 몇 번의 연락이 왔고, 기다리던 보험회사에서도 지불보증서를 문제없이 보내왔다. 행정적인 절차들이 하나둘 풀려가고 있었지만,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걸려 올 때마다 나의 심장은 내려앉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오후 2시로 예정되었던 교수님 면담은 바쁘신 일정 탓에 전화로 대신하게 되었다.

폐 상태는 다행히 좋아지고 있어서

부서진 쇄골뼈 수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수술이란 말에 잠시 휘청였지만, 좋은 소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만큼 폐가 좋아졌다는 증거이기에..



오후 2시, 오늘은 시부모님과 함께 면회실을 찾았다. 원래 면회시간은 저녁 7시 반이었다.

혼자서 먼 거리를 오가는 상황을 알고 병원에서

배려를 해 주셨다.

규정상 두 명만 면회가 가능했기에 아버님만 함께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사고 후 며칠 만에 아들과 마주한 아버지는

얼굴의 주름살이 더 늘어있었다.


폐 회복을 위해 풍선을 스무 번이나 불었다는 남편은 다행히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잠시 들른 교수님께서 회복속도가 빠르다며

내일 당장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걱정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평소 술 담배를 안 하던 사람이라 심각했던 폐상태가 빠르게 좋아졌던 것이다.


면회시간이 끝나갈 때쯤 면회를 끝내 달라는 간호사의 요청이 있었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올 모양이었다.

침상에 이끌려 들어온 연세 지긋한 노인과 그 주위를 둘러싼 근심 어린 보호자들의 표정에서

첫날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방해가 될까 싶어 남편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아버님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병실 문 앞에서 머뭇거리셨다.

어머님의 슬픔과는 또 다른

아버지의 묵직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가족들의 이 지독한 걱정과 슬픔을 남편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미안함으로 가득할 그의 마음을 생각하니 또 아려왔다.


고통의 파도를 견뎌내고 나면

마침내 평온한 회복의 바다와

마주할 것이란 걸 우리는 안다.


"다 지나갈 거야. 조금만 더 견디자."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나지막이 주문을 걸었다.

문무대왕릉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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