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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Aug 02. 2024

얼굴에 비친 얼굴

   

  덧없다     


  처음으로 마주한 얼굴을 보고 든 생각이 이따위라니


  당신의 메마른 얼굴 쓰다듬는 손길들 모든 것이 장난 같았다

 

  가는 길에 꽃이 가득해서

  다들 인생 잘 살았다고 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빈손으로 보내 미안 관에 얹은 돈은 다 들고 가버린대 난 뒤돌지 말라고 해서 당신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지 여윈 당신 잘 가시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던 게 후회된다 그것도 돈이라고 웃기지

     

  아 그래도 금니는 잘 넣어 보냈는데 받았어?     


  이를 어떻게 할까 울고 있는 사람들한테 묻더라 대체 그런 건 왜 묻냐니까 이걸 훔쳐 가거나 싸우는 집이 있대 웃으면서 말씀하시길래 재밌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이제 언니와 내가 누구인지 우리 엄마가 누구인지 우리 집 막내가 누구인지 물어도 그저 웃으며 모르겠다고만 한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점점 줄어들면

  미래를 살았던 것 같다     


  좋은 장례 지도사를 만나서 잘 가셨단다

  계란 장수 같았는데 난 그냥 자알- 가세요오하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어    

 

  올라갈 때는 그렇게 험했던 길이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다     


  이제 품 안에는 과거의 당신이 있고     


  사진에서조차 웃지 않는 당신을 숨겨 온 식구가 들어간다 지금 여기 당신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     

  일 더 하기 일은?     


  할머니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손뼉을 친다 찡그린 표정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잘했다고 한다     


  이따금 맑은 눈망울로 당신을 찾는다 왜 잊었으면 하는 건 못 잊고 우리는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낸다     

 

  아버지는 논에 갔지     


  그러면 거짓말하지 말라 하고 또 웃으신다 당신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 우리도 웃는다     

 

 난 있잖아, 스크린에서나 있는 줄 알았지 눈물 참으면서 연기하는 건 어차피 잊을 거 알아서 어떤 말실수를 해도 괜찮은 순간 같은 건     


  엄마는 맨날 할머니 댁에 간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도 못 알아보는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서운해     


  처음 보는 엄마의 엄마 얼굴

  그러면 또 처음 보는 엄마 얼굴     


  그게 뭐라고

  이렇게 아파     


  처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서     


  거기서도     


  처음 보는 슬픔이 비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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