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책방 Nov 28. 2023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

사랑과 믿음

9살 때 언덕에서 굴러 무릎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상당한 양의 피가 줄줄 흘렀던 모습이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는 얼른 구급상자를 꺼내와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주시며 등짝을 한 대 때리셨다. 언덕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는데 굴러 떨어져 다쳐서 왔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고 걱정이 되셨을지, 등짝을 왜 때리셨는지 지금에서는 이해가 된다. 나도 아이가 아픈데 약을 뱉거나 먹기 싫어하면 걱정이 되면서 화가 나기도 하니까. 하지만 9살은 이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다. 다친 건 무릎인데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등짝이 더 아픈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빠는 내가 다친 곳이 있으면 언제나 부채질을 해주시며 주문을 외워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봐. 아빠가 부채질해 주면 금방 나을 거야. 우리 딸 아픈 곳 빨리 나아라~ 우리 딸 아픈 곳은 바람과 함께 시원하게 사라져라~"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아빠의 주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누워서 아빠의 부채질을 받고 있으면 참으로 따뜻하고 안심스러웠다. 



나는 겨울이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추위에 약하다. 특히 자동차에 열선이 없었던 시절, 차가운 의자에 앉으면 얼음방석에 앉은 듯 온몸이 시려 발가락 끝까지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빠는 겨울이면 항상 찜질팩을 데워서 자동차 의자 위에 미리 놓아주셨다. 그 덕에 겨울에도 얼음방석에 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항상 먼저 내려가 시동을 걸고 따뜻해지면 내려오게 하셨다. "아빠가 자리 따뜻하게 만들어 놨어. 좋지?" 그때는 따뜻한 차 안이 좋을 뿐 미리 내려온 아빠가 얼마나 추웠을지, 얼마나 많은 배려와 사랑을 받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빠는 구구단도 노래로 만들어 알려주시고 중. 고등학교땐 시험공부도 도와주셨다. 어른이 되어서는 우리 가족의 운전연수까지 모두 해주셨다. 항상 차분하고 다정한 말투로.



아이가 커갈수록 과거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사실 나는 키우기 쉬운 아이가 아니었다. 예민하고 까칠했으며 어느 날은 가출을 한다고 짐까지 쌌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을 믿는다. 아빠는 항상 너의 선택을 존중해. 항상 엄마아빠가 뒤에 있단 걸 잊지 마."


출저 픽사베이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초등학생 딸이지만,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가끔은 말대꾸를 하는 날도 있다. 어릴 땐 육아서에 나오는 대로 잘 참고 훈육했었는데, 성장 중인 딸에게 아직 적응이 안 됐는지 "야. 엄마 화나려고 한다."를 입에 붙이고 산다. 그럴 때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우리 아빠라면 내게 뭐라고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행동과 말을 반성하게 되고, 화가 누그러든다. 얼마나 많은 인내와 믿음으로 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셨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 딸에게 사춘기가 오면 어릴 때 육아서를 읽었듯 사춘기에 관련된 책의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나에게는 책 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 시절 받았던 아빠의 사랑과 배려가 나에게 비타민이 되어 삶의 동력이 되어준다. 나도 딸이 힘들 때마다 꺼내먹을 수 있는 비타민을 한가득 담아주기 위해 오늘도 믿음과 사랑으로 하루를 지낸다.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헨리 워드 비처




매거진의 이전글 빵점이라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