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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27. 2024

누군가에게 다정했던 적이 있나요?

막상 교무실 문 앞에 서니 잠깐 망설여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점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교무실로 오라”라고 하셨으니, 물어봐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빨간색 색연필로 크게 B라고 적힌 과제를 들여다보았다. 다시 읽어봐도, 참고서와 교과서를 뒤적여 봐도 틀린 부분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정말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차분한 공기가 느껴졌다. 몇몇 선생님들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를 넘기는 소리, 전화 벨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나는 선생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가며, 마음속으로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선생님, 저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하.. 선생님이 B를 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네가 나보다 잘 아니? 돌아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단지 틀린 부분이 궁금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핀잔받을 일이었을까. 처음부터 물어보러 오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민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 질문이 선생님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로 보였던 걸까. 아니면, 점수를 따지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 걸까.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이 피곤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내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어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질문은 때로는 ‘버릇없음’이나 ‘따짐’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어른의 권위 앞에서, 아이의 목소리는 그저 작고 불필요한 소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질문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묻지 않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내 안에 남아 있던 작은 물음표들은 사라졌다.          



겨울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안경을 쓴 담임선생님은 단정한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오셨다. 표정은 늘 한결같았다. 무언가 특별히 기쁘거나 화가 난 기색도 없고, 학생들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적당히 엄격하면서도, 적당히 다정한 거리감. 그런 선생님이 내게 특별히 관심을 보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이 내 자리로 다가오셨다.    

 

“여니야, 잠깐 교무실로 와.”   

  

교과서를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묘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왜 나를 부르시는 걸까. 뭔가 잘못된 일이 있나 싶었다. 괜한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게 불편해졌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따라나섰다.          



복도 끝 창가 쪽 책상에 앉으신 선생님은 내 성적표를 펼쳐 보며 잠시 침묵하셨다. 종이 위를 오가는 시선이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셨다.     


“여니는 쉬는 시간마다 참 즐겁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훨씬 잘할 수 있는 애가 자꾸 머리 믿고 적당히 하려는 모습 보면 안타까워.”   


0교시에는 친구들과 몰래 매점에서 라면을 먹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종종 책상 위에 엎드려 자던 내가 적당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시는 얼굴과 말투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고개만 연실 끄덕이는데 선생님이 말을 이어가셨다.     



“부모님이 너무 예뻐하시겠어. 선생님도 여니 같은 딸 낳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선생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아이를 낳은 뒤에야 그 말이 가진 깊은 애정을 비로소 온전히 깨달았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해 사물함 뒤에 서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오셨다. 말없이 내 손에 귤을 쥐어주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셨다.     

“기특하다.”     

낯선 단어는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항상 조금 움츠러들었던 나로서는, 이런 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 다정함은 이해하기엔 낯설고, 거부하기엔 따뜻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감사함이었다. 그저 고등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봐 주고, 내가 스스로를 믿고 노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 같다.          


학생이 어른을 통해 배우는 것은 시험지의 정답이나 교과서의 지식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다정함은 그날 내 안에 작은 온기로 남아 있다는 걸, 글을 쓰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마주할 때, 그 온기를 어떻게 건넬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 다정함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일. 그날의 귤 한 알이 내게 남긴 가르침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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