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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18. 2024

자기만의 책상

엄마들이여, 책상을 갖자!



"엄마, 무슨 글 써? 내 얘기 쓰는 거 아니지?"


글을 쓰려던 찰나, 아이가 종알거리며 노트북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아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세탁기가 "띠리리 리리리~" 하며 울렸고, 밥솥은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잘 저어주세요." 소리를 더하며 나를 방해했다. 집안 곳곳에서 날아오는 신호음에 글을 쓰려는 마음은  조각조각 흩어져버렸다. 이런 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역시 식탁은 글을 쓰기엔 어쩐지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사실 대단한 서재를 꿈꾼 건 아니었다. 작은 책상과 책장 하나면 충분했다. 내 생각을 펼치고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엄마에게 서재라니….’


왠지 부리면 안 될 욕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식탁이며 거실 여기저기에 쌓여 가는 책들이 눈에 계속 걸렸다. 이제 정말 내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아이의 책장과 피아노가 있는 방 한쪽에 작은 자리를 마련했다. 딸이 어릴 때 보던 그림책들은 이웃과 나누고, 당근마켓에 내놓았다. 그렇게 남은 빈 공간에 하나둘 내 책들이 들어섰다. 책상이라고 하기엔 다소 작고 소박한 테이블을 조립하며, 마치 어린 시절 첫 책상을 받았을 때처럼 묘한 설렘이 피어났다. 비록 방의 대부분은 여전히 아이의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놓인 책들과 노트들만큼은 분명 내 것이었다.          




그곳에 앉으면 괜히 마음이 설렜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게임을 켜기도 하고, 낙서를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때로는 엎드려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상할 것 없는 자리였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작은 공간만으로 충분했다.     




책상에서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연재하고, 서평을 쓰며 책과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 지도사와 독서 지도사 자격증도 차근차근 취득했다. 가끔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둘러보며 오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전에는 아이를 키우느라 이런 일들을 미루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이 책상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처럼 느껴졌다. 특별할 것 없는 자리였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레고 즐거웠다.




"열심히네, 아주 베스트셀러 작가 되겠어."     


남편이 웃으며 던진 농담 섞인 말이 왠지 뭉클하게 다가왔다. 육아와 가사에 온 신경을 쏟으며 때로는 깊은 우울감에 짓눌리기도 했던 지난 시간들. 나를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오로지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추며 살았다. 그런 내가 요즘 들어 조금씩 밝아지고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가는 모습에 남편은 반가워했다. 그 작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내 안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책상을 중심으로 한 나만의 공간은 어느새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내 속도로 머물며 나만의 이야기를 심고 키울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마치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듯, 그 작은 테이블 위에서 생각과 글들이 천천히 자라기 시작했다. 나를 돌보고 나와 마주하는 일이 이렇게 조용하고도 풍요로운 경험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작은 책상 위에서의 시간은,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붙잡은 작은 등불 같은 것이었다. 삶이 어둡고 고단한 순간에도, 그 빛은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켜주지 않을까. 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책상 위에 쌓인 글들은 언젠가 내가 걸어온 길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내 세계는 오늘도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자라고 있다. 오늘도 나를 돌아보고 다독이는 시간이 이곳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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