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
퀴어 영화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던 나는 동성애를 긍정할 수도 그렇다고 교회의 논리대로 무턱대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서도 오랫동안 가치관으로 자리해온 기독교의 생각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성애 혹은 퀴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물론 그렇다고 동성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차별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게 되었던 건, '이 영화 때문에 집에는 걸어가야 할 것 같아'라는 씨네큐브의 월간 기획전 때문이었다. 사람을 걷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무작정,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전날 밤 심야 영화를 예매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새벽 두 시, 나는 걸어서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난 후 곱씹는 과정에서 정말로 좋아지게 되는 영화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해야 할 수십 가지 이유들을 떠올렸다. 이탈리아의 찬란한 햇빛과 그에서 뿜어 나오는 색감, 그리고 영화와 꼭 어울리는 OST.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온전히 사람에 집중하는 감독의 연출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매료되어 그 사람에게 특별한 'the one'이 되고 싶은 이야기, 나에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담백한 영화였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감정이 꼭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발현되지 않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때로는 그 감정이 비뚤어진 욕망이 되는 걸,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보지 않는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감정을 '첫사랑'이라는 정말 순수하고도 뜨거운 형태로 그려냈을 뿐이다.
어쩌면 영화를 보고 집에 걸어가면서 일어나는 사유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매혹된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OST 트랙을 들으며 걸어서 집에 가보길 조심스레 권유한다.
"예정된 이별 앞에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소년의 열병은 뜨거운 여름을 지나 시린 겨울이 되서도 여전히 달아올라 소년의 마음을 데우고 또 데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뜨겁게 떠오르고 시리게 저무는, 사람이라는 계절의 감각을 눈과 귀와 마음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영화다"
내가 느꼈던 영화의 감상평은 에스콰이어 에디터의 이 문장으로 갈음한다. 대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꼭 OST 앨범 트랙 3번, M.A.Y. In the Backyard를 들어보시길. 노래만으로도 뜨겁고 뜨거웠던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여름날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