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이면,
이곳에 오고 싶어져

연남동 카페 공그로트(gongrot)

by 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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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연남동 숲길 공원의 끝자락이다. 연남동 공원을 주욱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적과 불빛이 드물어지는 곳이 나타난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잦아드는 경계를 기점으로 그 뒤쪽으로는 연남동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연남동을 '핫플레이스'나 '외지인들의 도시'라고 느끼던 내가, 이곳이 주거지임을 실감한 건 이사 온 후 첫 번째 일요일을 맞이하고 나서였다. 동네에 있는 모든 카페와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하루 매출이 중요한 사장님들에게 일요일 휴업은 매우 큰 결단이었을 터.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한없이 응원하고 싶지만, 덕분에 나는 (멀리 나가기 싫은) 일요일이면 꼼짝없이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그런 날이 강제로 생겼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래로 계속해서 신촌과 같은 불야성에 살아왔으니 동네 가게가 모두 닫은 휴일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조금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상한 반골 기질이 있어서, 일요일 저녁이면 주말 동안 미뤄두었던 작업을 하고 싶어진다. 직장인이라면 '일요일 저녁에 일이 웬 말이냐!'라고 생각할 테지만, 일하는 시간과 요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에게 일요일 저녁은 남은 일주일 동안 얼마만큼 일해야 하고 얼마만큼 놀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시간이랄까.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되면 일요일 저녁에 그 목록을 정리하고, 새로운 글을 쓸 워드 파일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 또 일요일 저녁이라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되는 법. 그런 날이면 저녁을 먹은 후 노트북을 챙겨 일요일 저녁에도 열려 있는 가장 가까운 카페 '공그로트(gongrot)'로 발걸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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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그로트의 존재를 알고 나면 왜 이곳이 입소문 나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런 멋진 곳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4층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공그로트에는 널찍한 창과 테라스가 있다. 햇볕이 좋은 오후에 온다면 창밖으로 볕을 만끽하며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저녁에 와도 꽤 근사하다. 낮은 조도의 조명과 은은하게 흐르는 캐롤(12/16 기준)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자니 정말로 일주일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공그로트 바로 옆에는 '곰팡이마트'가 있는데 치즈나 와인, 맥주 등 각종 발효된 것들을 판매한다. 곰팡이마트에서 산 음료와 음식은 공그로트에서도 먹을 수 있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여름이나 늦여름 저녁에 와인을 한 병 사 들고 공그로트 1층 바깥 자리나 4층 테라스에서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공그로트가 생긴 거의 초창기부터 이곳에 왔으니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모두 지낸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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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자리는 3층. 널찍한 원테이블에 앉아 같이 또 따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에는, 비가 오면 나무 향이 그득하다. 언젠가 이런 큰 창이 있는 집이나 작업실을 가져야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집중이 되지 않을 때면 그저 밖을 바라보며 넋 놓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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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빠르게 생기고 빠르게 없어지는 연남동이지만, 반년 동안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카페를 보니 새삼 대견하다. 얼핏 (그래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카페를 위해 새로 지은 건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만큼 임대료나 이런 것들에 영향받지 않고 오래오래 이곳에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다른 곳에 가볼까 하다가도, 일요일 저녁이라는 생각이 들면 결국 발을 돌려 이곳으로 오는 나 같은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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