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작심삼일이란 말은 누가 만들었던가.
새해가 시작되고 18일쯤 지나니 슬슬 지속하지 못하는 계획들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는 '1일 1글쓰기'. 읽는 것, 보는 것,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정리해보자며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였지만 매일 글감을 생각하고, 시간을 내어 쓰고, 다시 한번 퇴고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던 아이디어는 노트북 앞에 앉으면 떠오를 줄 몰랐고, 어느 날에는 '이런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준다는 것도 아니고'라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늘 나의 글쓰기는 이런 패턴이었다. 글을 써보겠다며 야심차게 여행을 떠나거나 브런치에 매거진을 개설했지만, 막상 한두 편을 발행하고서는 답보 상태였다. 적어도 한 시리즈에 10편 이상 발행해야 그저 '단상'에 그치지 않고 연결된 글로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이런 게으름을 극복하고 꾸준함에 강제성을 부여하고자 (또다시?) 계획한 프로젝트가 바로 '작심6주 여행 글쓰기'. 분명 여행을 다녀온 후에 그 감상이나 여행기를 정리하고 싶지만 바쁜 생업에 치여, 혹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기억들을 묻어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여행책방에서 일한다는 장점을 살려 6주간 함께 모여 쓰고, 원한다면 서로의 글에 의견을 던져주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나의 역할은 '에디터'.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수업은 아직 어렵지만, 그래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어려워하는 사안들에 미약하게나마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을까?
에디터/편집자로 일한 시간은 2년 7개월 남짓(벌써?). 아직 누군가에게 명료한 언어로 조언을 주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려 글쓰기를 그만두게 만들어서는 안 될 텐데! 조급한 마음으로 선배 편집자에게 SOS를 치듯 서점을 뒤졌다. 그리고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라는 보물 같은 책을 찾았다.
하지만 해외에서 지갑도 길도 잃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여행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여기에 적힌 글들이 약간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딱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냉큼 집어 들어 빠르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출판 편집자로 일할 때 명심해야 할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중 몇 페이지는 귀퉁이를 접기로 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는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 외에도 처음 글을 쓸 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소소하지만 디테일하고 아주 도움이 되는 팁이었다. 60개에 가까운 김은경 에디터님의 실용적인 팁 중에 무릎을 탁! 쳤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p66 묘사란 읽는 이에게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맛보았던 음식을 설명해주고 싶으면 독자 역시 그것을 맛보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해주세요.
에세이를 쓴다면, 나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설득시킬 수 있느냐는 그곳의 풍경과 느낌,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묘사'하는 데서 결정 날 수도 있다.
p90 그럼 이제부터는 최고의 작품들만 봐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묻기에 글을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 제가 '어색한 침묵'이라고 생각한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과 응원을 찾고 있었던 거죠.
많이 읽고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잘 썼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읽으며 그렇게 써 보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p131 자신이 가진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한 번만 더 들여다보세요.
그래서 저는 '1일 1싸움'을 써보라고 권해드렸습니다. 부부끼리의 다툼은 언뜻 평범할 수 있지만 '매일'이라는 콘셉트를 붙여 어떤 부분 때문에 싸우는지를 적어보면 유머러스하면서 귀여운 연재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나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연재물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을 관찰하는 건 쉽지 않다.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좋은 주제가 떠오르겠지'라며 희망을 놓지 않을 수밖에. (누구든 '이런 글 써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제안해주는 것 환영합니다)
p155 타인의 무언가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줄기를 만드세요.
그럼 그 줄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아주 소수만 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을 정말 아끼는 이들일 것입니다. 이들에 둘러싸여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화려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따뜻하고 즐거우리라 믿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좋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용기를 얻고 글자를 적습니다. 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본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