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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pr 10. 2019

크고 작은 하루 2일째,  
여기가 한국이래도 좋아요.

바이마르에서 리모트워크 중

어제저녁은 두부찌개. 오늘 점심은 라면에 밥 말아먹기. 사실 아람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여기가 서울인지 바이마르인지 알 길이 없다. 아, 물론 창밖으로 푸른 언덕이 보이는 건 서울에서 절대 불가능할 일이지만.

라면 오이볶음 김치(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오늘은 발행 날. 부릴 생각도 없지만, 요령 같은 건 더더욱 피울 수 없는 날이다. 발행이란 목표를 위해 팀원 모두가 근면하게 일해야만 한국에 있는 저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었다. 하필 시차 적응에도 실패해 오전 4시(한국 시간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괜히 마음이 급해 바로 컴퓨터에 앉아 발행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거의 이 자리 붙박이

오전 7시쯤 본격적인 시작한 업무가 마무리된 시간은 오후 6시쯤. 중간에 아침도, 점심도 집에서 만들어 먹은 덕분에 꼬박 하루를 집안에서 앉아 일만 했다. 한국 노래가 흐르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로 대화하는 곳에 하루 내내 있자니 바이마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득 '이러면 서울과 뭐가 달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여기가 한국이래도 좋다'
라고 생각했다.


일단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발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기진맥진해서 예약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일하는 자아는 큰 위로를 얻었다.


상대적으로 마음도 여유로웠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마감을 하는 우리 회사는 마치 우아한 백조 같은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레터를 발행하지만 그를 위해 모두가 바쁘게 발을 헤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은 알게 모르게 긴장감을 주어 괜히 마음이 바쁘다. 하지만 바이마르에 있자니 그 모든 단어들이 바다 건너에 있는 것처럼 멀고 막연하게 다가왔다. 해이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바짝 조였던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독일 전통음식이래요 소시지랑 굴라쉬

그리고... 발행을 마치고 아람과 함께 먹는 노동주의 기쁨이란. 마침 예약 버튼을 누른 시간이 오후 6시 즈음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차려 입고 바이마르 시내(?)로 나가 독일 전통 음식을 먹었다. 500ml라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듯한 바이마 필스너와 함께. 일과가 끝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었다. 그것이 한국의 어느 선술집이 아니라 바이마르의 레스토랑이며, 그 상대가 한 달간 나를 하우스메이트로 초대해 준 아람이었기에 더욱 행복했던 건 안 비밀.

1일 1맥주: Weimarer Pilsner

'여행'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생활이 불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바이마르에 도착한 지 3일째인데 이 작은 도시의 길을 외우지 못할 만큼 돌아다녀보지도 못한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여행이 아니라 '이곳의 삶'에 집중했던 터. 서울에서의 일상이 이곳에까지 이어지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더 좋은 풍경을 보며, 더 좋은 마음으로 일상을 감사하게 살아낼 수 있어 값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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