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쯤이었나, 수아에게 바이마르 티켓을 보냈던 것이. 당시 독일 유학 첫 학기를 아주 호되게 보낸 후, 나는 끔찍한 기분으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수아에게 부디 여기로 놀러 오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바이마르 투어 티켓' 이미지를 얼렁뚱땅 만들어 보냈다. 무료 숙식 제공, 유효기간은 내 졸업 시즌인 2019년 여름까지.
우스갯소리 섞어 보낸 초대장에는 사실 별 기대가 담기지 않았었을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 바이마르Weimar는 최근 몇 년 간 힙한 장소들의 성지로 국내에 자주 소개된 베를린도 아니고,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처럼 직항 항공기가 닿는 대도시는 더더욱 아니다. 독일 땅덩이의 한 중앙에 있어 앞 세 도시로부터 못해도 서너 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와야 하고, 오더라도 한나절이면 얼추 동네 구경을 다 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여서 한국인 여행객이 부러 귀중한 시간을 들여 찾아올만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 분명히 내 초대장엔 기대 대신 그저 그리움과 바람만 담겨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잘하는 수아이긴 하지만, 지난겨울 그가 정말로 항공권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유럽은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며, 진짜로 자기가 가는 거냐며 신나 하는 수아의 이야기를 카톡으로 읽는데, 오늘 그가 정말 바이마르 중앙역에 나타나기 전까지 이 사실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한 번의 경유, 6시간 대기, 3시간 또 대기, 그다음 자전거 칸에 자기 몸만 한 가방들을 버리듯이 싣고, 예약석을 피해 기차에 무사 탑승해 4시간을 달려온 친구. 그는 바이마르에 도착하자 체력적으로 부칠 법한데도 신이 나서 콩콩 뛰었다. 1번 버스를 타고 우리 기숙사로 향하는 동안, 마치 연남동 수아네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가 오니 내가 사랑하는 서울이 다 함께 온 것 같다.
우리는 집에서 아마존으로 미리 구입한 에어 매트리스를 펼치고 환호하고, 학과 친구 아샤Asha가 빌려준 이부자리를 그 위에 펴고 또 환호성을 질렀다. 수아와 함께 온 인형 친구들을 방 곳곳에 앉히고, 옷을 정리하고, 나가서 함께 장을 보고, "Danke Schoen(고맙습니다.)"이니 "Tschuess(안녕!)"니 간단한 독일말을 익혔다. 나도 모르게 돌아다니는 내내 수아에게 침이 마르도록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바이마르는 한국 관광객이 올만한 곳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곳이었다. 환영해, 바이마르에 온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