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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pr 15. 2019

크고 작은 하루 5일째, 작심오일 at Berlin

작심삼일: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짐.


3일째를 잘 넘겼나 싶었는데 5일째에 마음이 느슨해졌다. 베를린으로 여행 와서 바빴다는 건 핑계. 5일째가 되니 쓸 말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여행에 대한 다짐이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감탄은 점점 사라지고, 일상에 가까운 익숙함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반대로 몸은 더 고되어졌다. 첫 유럽여행이라 잔뜩 긴장했던 게 풀어졌는지, 아니면 지난 일주일을 잘 보내고 드디어 휴일이라는 걸 몸도 알았는지 베를린 여행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나은 줄 알았던 감기는 다시 심해졌고, 아마도 여행 도중에 열이 났던 것 같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 같이 눈과 우박을 맞으며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녔던 거다.


정말이지, 한 달 살기의 첫 주말을 맞이해 몸과 마음에 모두 슬럼프가 왔다.



베를린에서의 둘째 날은 혼자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 바이마르까지 온 이후에 혼자 어딘가를 나가는 게 처음이라 긴장됐다. 가방을 앞으로 둘러메고, 지갑과 핸드폰은 늘 가방 속에 넣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무사히 버스에 탔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아차, 거꾸로 탔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이라면 한 정거장 후에 알아서 금세 내렸다는 점이고, 불행이라면 그 정거장 맞은편에는 내가 원하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손을 내놓으면 얼 것 같은 날씨에 15분 정도를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결국 버스가 오지 않아 다음 정류장까지 걸었다.


뭐,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들떠 있었다. "여행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어야지." 대성당을 보고, 국립미술관에 가서 교과서에 있던 그림들을 실제로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설명이랄까.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시공간을 초월한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문제였다. 그때부터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던 거다. 이미 미술관에서부터 몸이 아팠다. 배가 고파서 그러려니,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면서도 당장 잠들 것 같고,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는데 다음 일정을 강행했다. 하케셔 막트에서 보고 싶었던 몇 군데 가게를 보면서는 괜찮아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숙소로 돌아와 작업하는 아람을 옆에 두고 두 시간을 죽은 듯이 잔 후에 깨달았다. 열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결과적으로는 푹 자고, 다음날 아스피린을 하나 먹으니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하지만 당일에는 정말이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이면 - 그러니까 되는 일도 없고, 실수는 자꾸 내고, 몸은 마음만큼 안 따라주는 그런 날 -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 안에서는 더 좋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단정해 버리는 거다.


평소 같았으면 일찍 자버리고 다음날 새로운 시작을 했을 텐데, 겨우 2박 3일밖에 안 되는 베를린 여정이 자꾸만 아쉬웠다. 다음에 와서 '뭐야, 이렇게 또 금방 올 거였어'라고 하겠지만, 또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라 하나라도 더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베를린에서 돌아오며 다짐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과욕이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떠올리자고. 그렇지 않으면 여행지에서 쉽게 폭주하고, 쉽게 지칠 터였다. 게다가 바이마르로 온 지 벌써 5일째. 평소 같았으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시점이다. 자꾸만 날이 가는 게 아쉬워 초조하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걸 또 몸소 체험하고서야 알았다.


서두에 말했듯이, 요 며칠간은 글쓰기 슬럼프도 함께 겪는 중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 첫날만큼 예민하지 못하다. 여행이 일상으로 변하는 과도기에 서 있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주변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반짝거리는 눈을 유지하고 싶다.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알려주시길.


베를린 둘째 날 일정

Hallesches Haus
https://goo.gl/maps/SWtgJ52Dkv82

아람과 함께한 아침

베를린 돔(대성당) 
https://goo.gl/maps/DKgXXEqxtJs

베를린 돔

구국립미술관
https://goo.gl/maps/YFzKyWrTVG92

프라이탁 베를린 스토어
https://goo.gl/maps/xnC6Hje8rJ22

Madchenitaliener
https://goo.gl/maps/QAeAXq9BfGL2

P&T
https://goo.gl/maps/eesshvkU4KA2

점심 + P&T

The barn
https://goo.gl/maps/4hs9HV2kfu62

폭주한 덕분에 마신 The Barn 커피

Do you read me?
https://goo.gl/maps/LyKymVtTjew

Soda bookstore
https://goo.gl/maps/SucadJCrz5q

무스타파 야채 케밥
https://goo.gl/maps/KKCuugEQLv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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