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나의 교환학생 시절은 참 가난했다. 물적으로 가난하니 심적으로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시드니에 간 적이 있었는데 돈이 부담되어 블루마운틴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정말 다행으로 같이 갔던 친구들이 나를 설득해 같이 기차에 올랐고 블루마운틴에 도착하자마자, 오지 않으려던 과거의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당시 나는 교환학생을 가겠다며 돈을 벌지도 않았었고, 교환학생지에서 돈을 벌 수도 없었다. 지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교환학생 가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면 무조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서 돈을 모으길 추천한다. 안 그러면 괜히 어정쩡하게 여행도 많이 못 다니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만 가지게 되니까.
여하튼,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 이번 유럽 여행에서는 돈을 아끼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펑펑 쓰겠다는 건 아니었다. 대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사고 싶은 건 너무 망설이지 말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난 8개월간 24/7 일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참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에서 장 볼 때,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 가격을 비교할지언정 먹고 싶은 걸 내려놓거나 포기하는 일은 드물었다. 자신의 집 한편을 내어주며 조금은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을 아람에게 마음을 담아 밥을 대접할 수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 넉넉한 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에 나가 장을 봤다. 마트 한편에 예쁜 꽃다발이 있길래 하나 집어 들었다. 여행지에서 꽃을 살 일이 얼마나 있을까. 곧 떠나야 할 공간에 얼마나 오래 견딜지 모를, 그리고 내가 떠난 후에 누가 돌보아줄지 모를 꽃을 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며 시들어 없어질 존재. 꽃이야말로 진정한 사치품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사치품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든 꽃을 화병에 꽂아 정성스레 돌보는 중이다.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보고, 자꾸만 꽃이 있는 풍경을 카메라로, 눈으로 담고 있다. 하루 내내 집에서 일해야 했던 날도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억울했던 마음이 쉽게 누그러졌다.
집을 돌아오기 전, 기다리고 있던 아람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꽃을 안겼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줄 테니 웃어보라고 했었나. 덕분에 아람의 가장 좋아하는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