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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pr 20. 2019

크고 작은 하루 9일째,  맥주와 감자튀김

요즈음 아람과 나의 일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점점 노트북 앞에 매여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람은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아 같이 책상에 앉아 씨름하고 있었던 것. 이날도 우린 하루 내내 같이 있었지만,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점심을 준비하면서도 노트북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우리의 아침, 소박했다


"오늘은 일찍 끝나면 Koriat에 가서 케이크를 먹을 거예요." 햇살 아래서 먹는 커피 한 잔과 케이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거라도 없으면 정말 여기가 바이마르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요 며칠간 나의 작업 상황을 보아 온 아람은 말없이 웃었고, 결국 4시에 나오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못했다.

바이마의 카페들은 보통 6시면 문을 닫는다.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날이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날도 결국 오후 6시가 조금 넘어서야 일이 끝났고 가고 싶었던 Koriat는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 그래도 해가 길어졌으니 굳이 굳이 나가야겠다며 짐을 싸들었고, 아람은 감자튀김과 맥주를 마시고 들어가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랬나. 바이마에 온 첫 날 보았던, 유명하다던 감자 튀김집은 문을 닫았다. (사실 4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이 닫혀 있다) 배고픈 상태에서 들떠 있었던 우리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다시 올라가기도 싫었다. 괜히 요리하기 귀찮은 날들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처음으로 굴라쉬와 소시지를 먹었던 그 집으로 다시 갔다. 다행히 바에 두 자리가 남아 있었고, 우리는 목적지가 주어진 경주마처럼 다른 메뉴는 쳐다보지도 않고 감자튀김과 맥주 2잔을 시켰다. 오늘이 고되긴 고되었는지, 맥주가 참 시원했다. 감자튀김이 나오기도 전에 절반은 마셔 해치운 듯하다. '우리 오늘 얼굴도 서로 제대로 못 봤어요'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들. 며칠이 지난 후 그 기억을 곱씹어 보니 결국 한 마디만 남는다. "오늘 가장 좋았던 일은 지금이에요."


어느덧 9년 차 자취생이 된 나는 여전히 집에 가기를 싫어한다. 막상 들어가면 요리도 하고, 드라마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걸 알면서도 괜히 들어가면 아무도 없을 게 싫어 어딘가로 발걸음을 돌린다. (주로 친구가 있는 바에 가지-) 하루 내내 말을 많이 하지만, 진짜 대화는 늘 고프다. 이럴 때 함께 사는 친구가, 혹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퇴근 후에 함께 밥을 해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시고, 오늘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날에는 만남을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선택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

가게에서 나와 REWE에 들렀다. 그리고 또(?) 저녁 내내 먹을 냉동피자와 맥주 등등을 잔뜩 집었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 먹고(여기서 라면은 우리의 소울 푸드다) 냉동 피자를 덥혀 먹으면서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봤다. 분명 우린 일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돌아왔건만, 어쩐지 나른한 시간의 공기가 이미 내려앉아버렸다. 잔뜩 쌓인 설거지는 내일 아침으로 미뤄둔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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