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유독 길었다. 회사에 입사한 첫 해였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너 이미 3년쯤 다닌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 해동안 변화도, 일도, 감정 부침도 많았던 탓이다. 그래서 선뜻 2019년을 회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마주하는 게 두려웠고, 가능하면 조금 업그레이드된 나만 기억하며 2020년을 산뜻하게 시작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면만 할 수 없는 법. 회사에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오면서, 2019년을 회고하고 2020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왈이의 마음단련장(a.k.a.왈이네)과 함께한 멍상 워크숍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몸을 떨리게 한다.
왈이의 마음단련장은 작년 2월 즈음인가, 한 달 정도 다녔다. 소월길 어드메에 초록색 대문이 있는 예쁜 공간인데,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2월은 회사에서의 감정적인 문제로 너무 힘든 시기였는데, 왈이네에서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감각을 느끼고 싶어 계속 멍상을 하고 싶었지만 몸도, 마음도 바쁜 탓에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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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쉰다. 부유하는 생각에 닻을 내려 천천히 들여다본다. 아,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내 감정은 이런 마음 때문이구나.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쉰다. 크게 내쉰다. 아무것도 바뀌진 않았지만, 한결 나아졌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자고, 다짐해본다.
그런 왈이를 제주에서 보다니. 프로그램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뛸 듯이 기뻤다. 많이 편안해졌지만, 마음 정리가 한 번 필요하던 참이었다. 어쩌면 이번을 계기로 나는 왈이네 멍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왈이와의 명상 워크숍)
"지금 마음이 어떠신가요?"
- 숙취로 몸은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왈이네 멍상을 하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작년에 너무나 마음 챙김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2019년에는 늘 종종거리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고, 프리랜서 일을 하는 동안 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인 너무 컸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 못 하면 속상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그런데 그 감정이 자꾸 태도가 되어 드러난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또다시 저를 다그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한편으로는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못 즐긴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과 관련된 뭐라도 하고 있다는 게 저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면서도 동시에 저를 다시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던 거죠. 친구들은 이런 저를 보고 "너는 회사 안 좋아한다면서, 내가 아는 누구보다 회사를 좋아해"라고 말해주었지만. 어쩌면, 그냥 일과의 분리불안증세였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마음은 어떻게 편안해졌나요?"
- 대화를 많이 했어요. 지난 1년간 저랑 대화를 안 해본 팀원들은 없을 거예요. 일상적인 대화 말고, 정말 깊은 대화요. 때로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배워나가는 시간이었어요. 저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나에게 건네는 말과 태도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고요. 한 번에 해결된 건 아니에요. 1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팀원 한 명 한 명과 2~3번 이상의 대화를 해야 했죠. 과정은 (정말로)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저라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 것 같아요.
너무 애쓰지 말자는 마음도 가졌어요. 사람이 애쓰는 일은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는 글을 어디 SNS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가끔은 포기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스스로에게 들어요. 하지만 지속 가능한 나를 위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믿을래요.
(팀원들과의 2019년 회고)
"쏭의 2019년은 어땠나요?"
- 이건 킴과 1:1 미팅에서도 말한 이야기인데요. 지난 1년간 가장 다이내믹하게 변한 사람은 저래요. 일하는 스타일부터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까지. 그건 사실인 거예요. 일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안 한 것도 아니니 저만의 일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근데 이전에 했던 일은 모두 콘텐츠 관련 일이었던 거죠. 그런데 뉴닉은 조금 달라요. IT 회사에서 쓰는 근육이 필요해요. 주로 쓰는 근육을 바꾸는데 성장통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생기고, 서로의 마음이 상하는. 그래도 일 년을 돌아보니 저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도 제가 훨씬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기뻐요.
그리고 바뀌었다는 게, 제 강점을 잃어버린 건 아니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잘하는 것 같아요. 약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다는 생각?
"2020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 이전까지는 에디터 일도, 마케터 일도, 프로젝트 매니저 일도 해왔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본 적이 없었어요. 실제로 뉴닉에 입사했을 당시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가장 적을 때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1:1에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냐"는 질문이 조금 두려웠어요. 매번 면접 보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아니에요 킴!) 그런데 올해는 어찌 됐든 콘텐츠를 매니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에디터 일도, 마케터 일, 오퍼레이팅하는 것도 모두 재밌거든요. 한 가지만 하면서 살라고 하기에는 조금씩 부족한 느낌.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쥐고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물론 부담이 많이 될 거예요. 그만큼 잘 해내야 하는 책임도 생기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의외로 그 부담감을 즐기는 것 같아요. 진짜로 워커홀릭인가.
음. 그리고 이건 워크숍 때 말하지 못했지만 회사 사람들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회사에서 꼭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려고 모인 것도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고요. 하지만 그냥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을 합치는 동료로만 남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적어도 업무에 관련된 기쁨과 슬픔을 조금은 더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서로의 삶에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경계가 어디일까, 늘 예민하게 관찰하고 실험해 보는 중이에요.
올해 큰 목표는 2개다.
1. 너무 애쓰지 말자. 애쓰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2. 사랑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그것이 누구를 향한 사랑이든.
마음도 몸도, 회사도 일상도, 친구도 가족도 잘 챙기는 한 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