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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pr 01. 2019

나를 지키는 일상의 루틴

신미경 에세이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변명이지만, 꽤 오랫동안 루틴한 삶을 살지 못했다. 대학교 때는 걸핏하면 수강신청을 실패해 아침 수업과 오후 수업이 섞여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두 번째 직장은 일정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일어나는 시간만큼은 일정하게 유지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불규칙하게 바뀌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9개월은 불규칙한 생활의 끝판왕이었다. 어느 날에는 밤을 새우고 아침 다섯 시에 잠들어 열두 시 즈음 일어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에는 아침 5시 반부터 일어나 오후 2시 전까지 그날의 일을 모두 끝내는 고밀도 업무를 해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날에는 늦게 잤고, 늦게 일어났으며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보니 하루를 버리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었다.


어쩌면 회사가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다 귀찮다고 하는 '출퇴근'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갈 곳이 있고, 일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업무와 분리될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지난해 1월,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에 출퇴근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는 10시 출근, 7시 퇴근. 하지만 자율출근이 기본이라 더 일찍 퇴근하기도, 더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반, 딴 길로 새는 날이 반이었는데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그동안 밀린 드라마를 켜 놓고 저녁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퇴근하고 오면 늘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자정이 다가와 있었다.


그즈음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책 한 권이 있었다. 바로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인스타그램에서 아는 선배가 추천했던 책이다. 변화하고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도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 책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도움닫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그때까지는 몰랐다. 이 책이 일상의 작은 루틴에 관한 책이라는 걸.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이제 적응도 마쳤으니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다.


결과적으로 나는 여전히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아직도 일주일에 반쯤은 퇴근하다 딴 길로 새고, 청소나 빨래는 일주일씩 밀리기 일쑤다. 장은 실컷 봐 오는데 번번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썩은 식재료를 아까워하면서 버린다. 그럼에도 변화가 있다면, 삶에 조금씩 건강한 습관들을 들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침이면 향을 피우면서 환기를 한다. 아직 습관이 들지는 않았지만 생각나는 날에는 이불을 꼭 갠다. 한 시간 출근이 늦춰진 날에는 귀찮아하지 않고 청소기를 돌린다. 일찍 들어와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다음날 회사에 챙겨갈 도시락을 싼다. 좋아하는 과일을 사러 가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건강하게 즐기는 법(예를 들면 딸기주스라든가, 딸기 요구르트 볼이라든가, 생딸기라든가)을 열심히 찾아서 시도해본다.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커피 좀비'지만, 가끔 너무 공복일 때는 커피 대신 연한 홍차나 녹차를 마셔 본다. 라디오를 듣는데 새벽 1시에 시작하는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다>가 끝나기 전에는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본다. 그리고 오늘처럼 새벽 내내 뒤척이는 날에는, 노트북을 열어 무엇이라도 가볍게 써 본다.


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아서, '나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예쁘고 보기 좋은 삶을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그래도 나 이만큼이나 잘 살고 있네.'라는 기분이 들 때면 괜히 뿌듯하다. 힘들다는 서울살이를 그냥도 아니고 '잘'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 들기도 한다.


신미경 작가님이 추천해준 일상의 루틴을 모두 지키며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하나하나, 나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걸, 그래서 내 일상의 작은 루틴들을 스스로 만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지금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 말하지만, 나는 가까운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주어진 시간을 바지런히 쓰곤 한다.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미워하는 대신 고마워할 일이 많은 편이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나를 제대로 먹이고, 깨끗하게 입히고, 제때 재우는 규칙적인 생활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텔레비전을 보며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보다 영양 균형을 고려한 집밥을 차려 먹고, 늘 미루기만 했던 모닝 스트레칭은 이제 잠에서 깨면 몸이 알아서 요가 매트를 펼칠 정도가 되었다. 일 때문에 망가진 건강하지 않은 몸을 관리하려고 조금씩 시작한 것이 어느새 몸에 밴 루틴이 되어 나의 하루를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고 있다." - p. 5


P.S.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일상의 루틴은 기록. 인스타그램에서 @ins.note 님이나 @kyurimkim 님이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기록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해야지!'라고 다짐하는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일 조금씩 습관을 들이는 것, 그래서 나의 루틴으로, 나의 뿌리로 만드는 것이 올해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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