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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an 12. 2020

나는 프로경의선러로 남고 싶지는 않은데

첫 번째 사람: 인터뷰는 처음이라서

“나는 프로경의선러로 남고 싶지는 않은데.”


첫 번째 인터뷰를 한 정민언니를 우리는 프로경의선러라고 부른다. 대학 시절부터 경의선을 타고 학교를 등하교했는데, 그 배차간격의 악명이 높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언니의 핸드폰에는 세 곳의 경의중앙선역 시간표가 즐겨찾기 되어 있다.


나는 그 표현이 당연히 우리 잡지에 들어갈 줄 알았다. 일산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일산으로 출퇴근하는 언니의 일상에는 늘 경의중앙선이 함께 했으니까. 그리고 ‘프로경의중앙선러’라는 단어는 잡지에 쓰이기도 딱 좋았으니까. 처음에는 언니도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인터뷰한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면서도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면서.


그리고 두 번째 인터뷰 때 언니는 말했다. “나 저번에 했던 질문에 대답 다시 해도 돼? 그리고 ‘프로경의선러’라는 말은 빼고 싶어.” 당연하지. 그런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더 궁금해.


“왜, 뉴스에서도 꼭 사고가 나면 사람들이 부르기 쉽도록 별명 같은 걸 붙이잖아. 그런데 내가 어느날 경의선을 타고 가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뉴스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나를 ‘프로경의선러’라고 부르는 걸 상상해봤거든? 그런데 그게 너무 별로인 거야. 내 삶의 다른 모습들은 다 지워지고, 경의선으로 출퇴근하는 모습만 남은 것 같아서. 나름 내 첫 인터뷰고, 누군가는 나를 여기에 나온 모습만으로 상상할 텐데 경의선 타는 모습으로만 남고 싶지 않아.”


아, 그러네. 그것까진 생각을 못 했다 언니. 돌이켜 보니 내가 생각하는 인터뷰와 언니가 생각하는 인터뷰의 무게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면서, 인터뷰란 게 기회가 오면 너무 기쁘지만 아주 생소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평범한(?) 회사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언니에게는 인터뷰를 한다는 경험 자체가 낯설었을 것이다. 게다가 생애 첫 인터뷰에서, 업무나 특정한 취미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언니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달라는 인터뷰어를 만나버렸으니.


그 이후로 서울이십 인터뷰를 할 때면 늘 언니의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다른 모습은 지워진 채 하나의 모습으로만 특징 지워지기 싫다는 그 말을. 그럴 때마다 인터뷰가 자꾸 딴 길로 샌다. 가능한 한 인터뷰이의 더 많은 모습과 생각을 알고 싶어서. 자꾸만 인터뷰 시간이 2시간, 3시간을 넘어가서 녹취록을 풀어내는 게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결국에 텍스트를 다 정리하고 나면 인터뷰가 좀 더 세밀하고 섬세해졌다는 걸 느낀다.


서울이십을 하면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말을 자꾸만 되뇌는 이유다.


당신의 서울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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