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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Apr 20. 2024

비효율과 낭비의 극치

2부 엄마독립시키기

흰 바탕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는 주인 잃은 그림자 같았다. 손가락 위에 바위가 얹힌 기분을 느낄 때, 4년 만에 반가운 친구의 연락받고, 광주에서 인천으로 올라갔다.

“현수야 요즘도 글 써? 그때 너 다르게 봤어.”

문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며 공부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색다른 모습이었어. 처음 보여준 게 독후감이었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눈을 감자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건네던 그때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간당 2,800원을 받고 시작한 아르바이트. 4시간을 일해야 만원 안팎의 돈이 쥐어졌다. 처음으로 미래가 불안해졌다. 아무도 찾지 않는 교내 도서관. 마음의 안식을 위해 책을 읽었다. 사서 선생님의 성화에 독후감을 썼다. 교내단상에 올라 상장과 문화상품권 3만 원을 받았다. 개선장군처럼 집에 들어갔다. 방에서 엄마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냉큼 정수기에서 찬물을 따라서 건넸다. 무심히 물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눈만 돌려 힐끗 쳐다봤다.

“독후감 써서 냈는데 금상 받았어.”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보였다.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후로 상장받으면 식탁 위에 펼쳐놓았다. 주말 아침. 옷을 빨아 건조대에 널었다. 교복 셔츠와 바지를 다림질하던 때. 자다 깬 그가 나와 상장을 건네며 말했다.

“학교에서 받은 거로 우쭐하지 마. 그래봤자 우물 안 개구리야.”

뱀과 마주친 개구리처럼 온몸이 바싹 얼어붙었다. 와이셔츠 손목 부분이 누렇게 변했다.     


점심시간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게시판에 눈길이 갔다. <제2회 하이타니 겐지로 독서감상문대회> 「태양의 아이」가 목록에 있었다. 오키나와에 살며 초등학교 5학년 후짱의 이야기는 내 추억과 겹쳤다. 떡볶이 장사하며 가정을 꾸리는 어머니. 조현병이 있는 아버지. 그사이에 끼어있는 나.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었다. 또 다른 비밀 일기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처음으로 외부대회에서 입상했다. 서울에 올라가 시상식에 참여했다. 우물 밖에서 받아온 상장을 식탁에 펼쳐놨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뒤집힌 상장의 문구들이 쏟아져 있었다.     


그날 이후 문학은 하나의 부업이 되었다. 뽑아주고 싶은 글을 찍어냈다. 부상을 돈으로 바꿔 저축하는 즐거움. 욕심이 야금야금 커졌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는 꿈을 꾸면서도, 언제나 현실에 직면했다. 생활보장대상자의 가정환경. 외도하는 엄마.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아빠. 꿈과 밥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고등학교 졸업 후 15년이 지났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지 않았다. 머릿속에 문자와 단어는 북어처럼 말라갔다. 침대에 누워 태블릿을 켜고 값싼 행복에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언어 지능 의식의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다시 사용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쓰기는 비효율과 낭비의 극치입니다.”

정명석 작가님의 특강을 들었다. 더 이상 문학은 쓸모가 없다. 사람들은 글보다 영상을 먼저 찾는다. 글은 유용하지 않다. 이전에는 부상을 돈으로 바꿔 저축하는 즐거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기가 아니었다. 에세이를 쓸 때 즐거웠다. 새벽잠을 줄여 퇴고한 글을 친구에게 보여줄 때의 기쁨.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떠오를 때의 환희. 시상식에서 상장을 전달받을 때의 설렘. 돈 때문이 아니었다. 완성된 글을 다시 읽고, 마침표를 찍었다는 뿌듯함.          


다시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방에 틀어박혀 문장의 완성도를 높인다. 첫 문장을 띄웠다. 이제 마침표를 찍기 위해 고난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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