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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Apr 27. 2024

똑같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

2부 엄마독립시키기

쌍둥이가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 매달려 있었다. 난처해하는 엄마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냉장고 문을 열어주었다. 몸의 절반을 밀어 넣고 고개와 팔을 휘저었다.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어떤 걸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달고 시원한 게 먹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떠난 냉장고 앞으로 갔다. 갈색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나를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 그 시절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밤잠을 줄이며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밤늦게 회식이 끝난 그가 초인종을 연신 눌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인사하라는 것 같았다. 역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내게 검정 봉지를 건넸다.

“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 왔으니까 먹어.”

“나 공부해야 해.”

사내가 이렇게 숫기가 없냐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감정이 좋은 날은 잔칫집, 좋지 못한 날은 초상집이었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방에서 나와 투게더를 열었다. 밥숟가락으로 퍼서 먼저 권했다. 두어 숟가락 내 입에 집어넣었다. 겉은 살짝 녹았지만 이가 아플 정도로 단단했다. 그와 나의 감정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술기운에 잠이 들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곤죽이 된 투게더를 들고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성에가 잔뜩 낀 아이스크림의 무덤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커피를 타며 생각했다.

‘다른 집은 자식이 공부하지 않아서 걱정하던데’

내 미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 때문에 시험을 망칠 수 없었다. 커피를 사약처럼 꿀꺽 삼켰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주방으로 다시 왔다. 그가 아침에 마실 꿀물을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화장실로 향하던 그가 말했다.

“어려서부터 투게더를 참 좋아했어. 누구 닮았는지 입도 참 고급이야.”

‘내가 언제부터 투게더를 좋아했을까?’

 

“나도 하나만 먹어보면 안 될까?”

“안돼. 이거 엄청 비싼 거야. 나도 하루에 하나밖에 못 먹어”

초등학생 때 게임을 하러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엄청 비싸고 맛있는 간식을 자랑했다. 종이상자에 영어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속에 낱개로 개별 포장된 아이스크림, 번쩍이는 유광 껍질을 벗기자 포슬포슬한 노란색 알맹이가 나왔다. 후하고 입김을 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모습.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내가 뺏어 먹을까 봐 한입에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얼굴에 행복이 번지는 게 보였다.

“엄마,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포장지를 꺼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스크림 껍질. 엄마는 일반 빙과류 냉장고가 아닌 고급 아이스크림 칸을 열었다. 내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냉동실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투게더를 꺼냈다. 꽝꽝 얼어서 숟가락도 들어가지 않는 아이스크림. 자꾸만 오리주둥이처럼 튀어나오는 입술을 안으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 착하지? 어서 집에 가자”

엄마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손을 잡아끌었다.

  

유아기 때는 부모가 세상 전부다.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기대와 바람을 저버려도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겪으면 혼란이 생긴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다.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과 멀어져야 하는데, 애착 관계에 있는 부모와 거리를 두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가 왜 투게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욕구를 참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던 아이. 처음 사달라고 말했던 엑설런트. 그 대신 투게더를 사준 엄마. 싫은 내색을 보이면 떠나갈 것 같았다. 가슴에서 뜨겁게 차오르는 불안을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식혔다. 원하는 걸 감추고 순응하고 착한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인정을 받고 기대를 충족하는 데 집착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조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분식집을 할 때 IMF를 맞았다. 700원짜리 투게더보다 5배 비싼 엑설런트를 손에 쥘 수 없었을 거다. 한 번은 사줄 수 있어도 매번 사달라고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겠지. 엄마가 느끼기에 똑같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었을 테니까.

   


‘이게 뭐라고 참’

가격표를 보지 않았다. 투게더 옆 엑설런트를 집었다. 포장지를 벗겨 입에 넣었다. 달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조금 짜게 느껴졌다. 하나를 더 먹을까? 생각했지만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별것 아닌 엑설런트를 먹기까지 34년이 걸렸다. 가슴속에 너무 오랫동안 얼어있었다. 이제 성에가 잔뜩 끼어버린 아이스크림일랑 비워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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