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가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매달려 있었다. 난처해하는 엄마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냉장고 문을 열어주었다. 몸의 절반을 밀어 넣고 고개와 팔을 휘저었다.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어떤 걸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달고 시원한 게 먹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떠난 냉장고 앞으로 갔다. 갈색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나를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 그 시절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밤잠을 줄이며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밤늦게 회식이 끝난 그가 초인종을 연신 눌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인사하라는 것 같았다. 역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내게 검정 봉지를 건넸다.
“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 왔으니까 먹어.”
“나 공부해야 해.”
사내가 이렇게 숫기가 없냐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감정이 좋은 날은 잔칫집, 좋지 못한 날은 초상집이었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방에서 나와 투게더를 열었다. 밥숟가락으로 퍼서 먼저 권했다. 두어 숟가락 내 입에 집어넣었다. 겉은 살짝 녹았지만 이가 아플 정도로 단단했다. 그와 나의 감정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술기운에 잠이 들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곤죽이 된 투게더를 들고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성에가 잔뜩 낀 아이스크림의 무덤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커피를 타며 생각했다.
‘다른 집은 자식이 공부하지 않아서 걱정하던데’
내 미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 때문에 시험을 망칠 수 없었다. 커피를 사약처럼 꿀꺽 삼켰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주방으로 다시 왔다. 그가 아침에 마실 꿀물을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화장실로 향하던 그가 말했다.
“어려서부터 투게더를 참 좋아했어. 누구 닮았는지 입도 참 고급이야.”
‘내가 언제부터 투게더를 좋아했을까?’
“나도 하나만 먹어보면 안 될까?”
“안돼. 이거 엄청 비싼 거야. 나도 하루에 하나밖에 못 먹어”
초등학생 때 게임을 하러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엄청 비싸고 맛있는 간식을 자랑했다. 종이상자에 영어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속에 낱개로 개별 포장된 아이스크림, 번쩍이는 유광 껍질을 벗기자 포슬포슬한 노란색 알맹이가 나왔다. 후하고 입김을 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모습.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내가 뺏어 먹을까 봐 한입에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얼굴에 행복이 번지는 게 보였다.
“엄마,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포장지를 꺼내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스크림 껍질. 엄마는 일반 빙과류 냉장고가 아닌 고급 아이스크림 칸을 열었다. 내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냉동실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투게더를 꺼냈다. 꽝꽝 얼어서 숟가락도 들어가지 않는 아이스크림. 자꾸만 오리주둥이처럼 튀어나오는 입술을 안으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 착하지? 어서 집에 가자”
엄마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손을 잡아끌었다.
유아기 때는 부모가 세상 전부다.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기대와 바람을 저버려도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겪으면 혼란이 생긴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다.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과 멀어져야 하는데, 애착 관계에 있는 부모와 거리를 두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가 왜 투게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욕구를 참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던 아이. 처음 사달라고 말했던 엑설런트. 그 대신 투게더를 사준 엄마. 싫은 내색을 보이면 떠나갈 것 같았다. 가슴에서 뜨겁게 차오르는 불안을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식혔다. 원하는 걸 감추고 순응하고 착한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인정을 받고 기대를 충족하는 데 집착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조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분식집을 할 때 IMF를 맞았다. 700원짜리 투게더보다 5배 비싼 엑설런트를 손에 쥘 수 없었을 거다. 한 번은 사줄 수 있어도 매번 사달라고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겠지. 엄마가 느끼기에 똑같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었을 테니까.
‘이게 뭐라고 참’
가격표를 보지 않았다. 투게더 옆 엑설런트를 집었다. 포장지를 벗겨 입에 넣었다. 달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조금 짜게 느껴졌다. 하나를 더 먹을까? 생각했지만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별것 아닌 엑설런트를 먹기까지 34년이 걸렸다. 가슴속에 너무 오랫동안 얼어있었다. 이제 성에가 잔뜩 끼어버린 아이스크림일랑 비워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