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여섯. 그동안 가슴에 담았던 말을 꺼냈다. 수화기 너머로 육두문자가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종료 버튼을 누르고 저장된 번호를 차단했다. 카카오톡으로 쉼표 없는 단문의 글이 내리 꽂혔다. 대화방을 나가고 차단했다. 다음 날 아침 스팸 함이 가득 찼다는 팝업이 떴다. 가장 마지막 문자가 보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새끼.”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있던 사람. 그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엄마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왜? 너도 내가 부자 되는 게 배가 아프니?”
그는 얼었다 녹아 탁해진 동태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흔일곱 무기계약직으로 주야간 맞교대 공장을 다녔다. 내가 더 이상 그의 노후대책이 되지 못함을 깨닫자, 사업을 시작했다. 농X 대기업 임원과 결혼한 막내 이모. 그 인맥을 통해 감자를 비싸게 납품해 부자가 되겠다는 포부였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대기업에서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감자를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주먹구구식으로 3년 단기 소작을 계약했다. 1톤 화물트럭을 샀다. 밭을 일구기 위한 트랙터도 빌렸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들였다. 매일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새 나갔다. 그는 인건비를 벌기 위해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갔다. 일요일에는 직접 밭일을 나갔다.
“한 명당 9만 원인데, 간식에 밥 사주고, 담뱃값까지 13만 원이 넘는다니까?”
농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눈그늘이 깊어졌다. 언젠가는 저것이 내게 뿌리를 뻗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전화로 돈이 없다고 푸념했다. 노골적으로 내 돈을 쓰고 싶은 걸 내비쳤다. 듣고도 모르는 척 넘겼다. 1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모두 탕진했다. 감자를 수확하려면 아직도 두 달이 더 남았다. 3금융권 러X엔X시에 발을 들였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눈덩이처럼 커졌다. 불똥은 나에게까지 번져 파국을 가져왔다. 결국 그는 키워준 값을 달라고 말했다. 예상한 일이라 놀라지 않았다. 스물다섯 사회 초년생의 눈에도 광기가 보였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위험과 수익을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았다. 단위 면적당 얼마 큼의 감자를 수확하고, 몇 명의 인원이 며칠간 일해야 하는지. 각종 소모품과 기자재대여료를 계산하고 감자를 팔았을 때 예상 손익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과대망상적 사고로 자신감이 넘쳤다. 초기 투자금은 적게 계산했고 수익은 확대해석했다. 그는 나와 전화할 때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농사를 크게 지어야 해”
이런 돼먹지도 않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걸까? 큰돈을 빨리 벌려고 했다. 시야는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다. 우후죽순식으로 여러 곳의 밭을 계약할 때 말렸다. 하지만 빠르고 큰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찬 미래 앞에서, 내 조언은 배 아파서 말하는 질투로 들렸다. 결국 빚이라는 작은 돌부리 하나로 큰 포부가 고쿠라 넘어졌다.
스물다섯 살 그의 일억 오천만 원의 빚을 떠안았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엄마 명의의 땅 지분 50%를 나에게 명의 이전한다. 더 이상 돈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조금 더 크고 넓은 전셋집으로 옮기기 위해 모았던 돈을 러X시X시에 입금했다. 부족한 건 내 명의로 그의 빚을 승계했다. 머릿속에서 스트레스호르몬 뿜어져 나왔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승모근이 잔뜩 경직했다. 그때마다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명상했다.
‘몸은 아직 건강하다. 주말마다 특근 잔업 빠지지 않고 일하자. 사 년만 버티면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운이 좋았다. 저금리 기조의 시대상 덕분에 이자가 적었다. 덕분에 나는 삼 년 반 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다.
“성과급 잘 나왔지? 뉴스에서 나오더라. 2년 남았어. 이번에는 감자 비싸게 팔 수 있거든. 엄마한테 3천만 빌려주면….”
그의 탐욕은 나이를 먹을수록 커졌다. 빚을 승계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내게 손을 벌렸다. 모든 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오입질도 그렇게 들켰으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더 이상 단 1원도 줄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물여섯까지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엄마의 삶을 포기하고 여자의 인생을 선택했듯이, 나도 자식의 삶을 포기하고 내 인생을 살아갈게요. 아줌마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덤덤했다. 어떤 느낌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지금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딱 그 정도 마음었을 거다. 돈을 빌리기 위해 서산에서 광주까지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다. 휴대전화로 이야기할 만큼의 간절함. 당연히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라 생각하는 안일함. 그가 나에게 문자메시지로 쏟아낸 악담과 저주.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 회사 앞에서 1인 피켓시위. 인사팀에 연락해 잘라버리겠다는 위협. 그렇게 할 용기도 방법도 모르는 사람.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나를 쥐락펴락할 수 없다. 이제 모든 결정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