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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Jun 23. 2024

이기적인 용서

2부 엄마독립시키기

‘아무도 읽지 않는 에세이 연재가 그렇게 중요한가?’ 마음속에서 질문이 매주 떠올랐습니다. 그때마다 정명섭 작가님께 해주신 “글쓰기는 비효율과 낭비의 극치.”라는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항상 효율적으로만 살아온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비효율. 매일 절약하고 아껴서 살아온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낭비. 이것을 만끽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게 질문했고 그것에 대한 답을 글로 풀어냈습니다.     


24년도 4가지 버킷리스트를 정했습니다. 첫 번째 10월까지 살을 빼서 보디 프로필을 찍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개월 차 10kg을 감량했습니다. 두 번째 4학년 마지막 봄학기. 상담심리 부전공을 신청하고, 지나가면 더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모두 신청했습니다. 결국 21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살았습니다. 목요일까지 쉼 없이 공부하고,  과제가 밀리지 않게 매주 상담심리 리포트 두 편을 작성했습니다. 세 번째 올해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하기입니다. 틈틈이 '이번 주 에세이는 뭐 쓰지?' 고민했습니다. 금요일 새벽 에세이 초안을 작성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읽고 퇴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작성한 글을 올렸습니다.     


4부작 40편으로 생각한 글의 절반을 작성했습니다. 22주 한 번의 펑크 없이 연재를 끝마쳤습니다. 스물두 편의 글에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운 통찰. 상담심리학과에서 깨달은 무의식 속 나에게 길어온 답을 녹여냈습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훅을 집어넣고, 밋밋했던 스토리를 수정해 의미심장한 플롯을 만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에세이 한 편당 독자의 궁금증이 생기는 조각을 만들어, 다음 글을 읽으면 퍼즐처럼 채워지게 글을 썼습니다. 12화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로 2부 엄마독립시키기를 끝냈습니다. 중간후기를 적을 틈도 없이, 봄학기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예창작학과 과제 4개. 상담심리학과 리포트 두 편과 퀴즈 이론시험 세 개.     


출근해서 일하고, 잠을 줄어서 공부하고 과제를 했습니다. 이 주간 몸이 회복할 틈도 없이 몰아붙였습니다. 중학생 이후로 감기 한 번 걸려본 적 없었는데, 잠을 조금 자고, 많이 움직이고 식사량도 줄이자, 몸이 오픈 윈도 상태가 되었습니다. 찢어지는 기침과 동반한 끓는 가래. 근육통과 이어지는 열. 월차를 쓰고 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일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심리학 개론 기말고사를 치렀습니다. 다음날부터 빠르게 몸이 회복되었고, 일요일 이상심리학 이론시험을 끝으로 길었던 봄학기가 끝났습니다. 회사에 빠지지 않고 출근했고, 며칠 쉬었던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다만 일주일 동안 집에 돌아와서 글도 쓰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난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황사에도 이로운 점이 있습니다. 모래바람 속에 섞여 있는 알칼리성 성분이 산성비를 중화해서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방지하고, 바다의 플랑크톤에 유기 염류를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황사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쓴 1부 1화 손톱에 가시가 박혔다.에서 나오는 신X지 포교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그들을 만나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덕분에 많은 고전문학 「데미안」, 「싯다르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신곡」, 「파우스트」, 「동물농장」, 「수레바퀴 아래서」를 접했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YOUNG VOICE 청년 강연콘테스트 광고를 접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대회에 지원했습니다. 당연히 버썩 얼어서 면접을 망쳤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운이 좋게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명이 찾아왔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봐도 참 부끄럽지만, 비대면 스피치대회 영상 촬영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 충장로 전일빌딩 앞 청년 주관 무대에 올라 광주 시민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준비한 PPT 슬라이드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야기는 똑바로 전달했습니다. 무대에 서서 내 이야기해 보기.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뤘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욕망이 샘솟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돈이 없어서 포기했던 문예창작학과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세종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3학년 편입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일 년 동안 36학점을 취득하고, 원했던 상담심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매 순간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과거의 나와 마주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내가 왜 그런 생각과 결정을 내렸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심정이었고 마음가짐이었는지를 돌아봤습니다. 나를 깨닫는 순간.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던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였고, 또 가해자였습니다. 엄마도 외할아버지 할머니께 뒤틀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어긋난 사랑을 전했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엄마. 학교는 항상 오전수업만 받고 집에 돌아와 동생을 돌보 밭일을 도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업해 일해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셋째 장남과의 차별로 마음속에 피어나는 열등감. 막냇동생에게 치우친 부모의 사랑과 관심. 제때 치유되지 못한 엄마의 상처와 아픔이 마음속에서 곪고 썩어, 저에게 이어졌습니다. 사랑 없이 시작한 결혼. 연애 한 번 못 해본 젊음이 아쉬워 외도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그의 마음에 다다르자, ‘부모가 어떻게 자식에게 그럴 수 있지?’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애착 대상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던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다시 만나 고통을 받습니다. 혹은 자식에게 혐오했던 부모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일.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것. 이 모든 원흉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봉합하지 못해서. 그들을 용서하지 못해서. 증오의 사슬이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생 때 본 영화 에릭 브레스 감독의 「나비효과」(2004)에서 남자주인공(에반 트레본)은 연인(케일리 밀러)을 구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를 바꿔도 불행해지는 현재를 마주하는 주인공. 결국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가 탯줄로 자살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저 또한 자식이 생긴다면. 내가 혐오하는 부모처럼 아이를 핍박하고 착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같은 저주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심리학 강의와 에세이를 쓰며 새로운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제 엄마를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는 내가 용서하였는지 알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화 분노 억울한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에서는 ‘나한테 왜 그랬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용서하기로 한 결정을 두 손에 꼭 쥐고 있으려 합니다. 이 판단을 절대 후회하지 않고 번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부정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과 사랑의 결실이 생긴다면, 내 부모에게 받은 뒤틀린 사랑을 전하지 않는 단 하나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네 번째 마지막 버킷리스트입니다. 24년 8월 아버지를 독립시키려 합니다. 제가 내놓은 조건을 받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버리고 이사하려고 합니다. 이때 정말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년 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나왔던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새롭게 태어나고자 합니다. 스물여섯 어머니를 독립시키며 한쪽 날개를 꺼냈습니다, 서른넷 아버지를 독립시키면서 나머지 날개를 꺼내 보려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이 깨달음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를 연재한 22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쓰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문학을 공부하며, 미약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나만의 문장 색깔 분위기 맛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에디터에 관련된 책 읽고 편집자에 빙의해서 수정해 보려고 합니다. 첫 문장, 플롯, 제목 같은 것을 조금 더 신경 쓰려합니다. 부족함을 채워서 올해 버킷리스트를 단순하게 "했."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었다."로 장식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는다면 상편에서 비워두었던 조각을 메꾸기 위해 이기적인 용서 하편을 마무리 지어보고 싶습니다. 브런치 스토리 저의 첫 번째 구독자이며, 멘토 김우영 님께 감사의 인사를 적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님들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이번 이기적인 용서 상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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