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까요..?
일하던 카페 건물에는 상담센터가 있었다. 그곳 원장님께서는 종종 낮시간에 텀블러를 들고 오셔서 커피를 사가셨다. 여느 때와 같이 가게에 오신 어느 날, 원장님께서 내게 짧은 인사말을 건네주셨다. 밝게 웃으며 대답하던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서 바보같이 울면서 대답을 해버렸다. ‘우는 건 혼자 몰래 울어야 하는데!’ 너무너무 놀라고 창피했지만 웃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났다. 원장님과 늘 짧은 인사만 주고받았었는데 뜬금없는 눈물을 계기로 그날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게 되었다. 내게 심리상담을 권유하셨고, 꼭 원장님네 센터가 아니더라도 상담을 받을 곳은 많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상담을 원했다. 그래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일을 그만둔 뒤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 내가 다니던 대학의 상담센터를 가게 되었다.
우선 상담을 가기 전, 걱정이 많은 내게 여러 가지 상상과 걱정이 앞섰다.
걱정 1. 상담시간 동안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무조건적인 편을 들어주고, 내담자는 공감과 위로만 받는다.
->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한 채 결국 자기 발전 없이 영영 그 상태로 머무르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 2. 내가 단지 상담기관의 관찰대상이 되거나 어떤 자료수집의 이용대상이 될 뿐, 비밀유지의 보장도 못 받고 진정성 있는 상담을 받지 못한다면…
걱정 3. 나를 엄청 이상한 사람으로 여긴다. 혹은 그렇다는 사실을 들켜버린다.
->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정말로 미쳐버린다. 혹은 지나치게 상담만을 의존하게 된다.
걱정 4. 어쩌면 나는 정말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지도 몰라, 정신분석 당하고 붙잡히게 된다.
이런저런 걱정들 탓에 상담이 필요하다 느낀 후로도 바로 가지 못하고 시간이 꽤 오래 흘러버렸다. 하지만 결국은 상담이 절실하다 느껴졌고 ‘아 모르겠다, 일단 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간단한 검사들을 했고, 상담은 주 1회씩 진행됐다. 우선 나는 붙잡히지도, 격리당하지도 않았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가 여태껏 품어왔던 궁금증들을 들어주시고 답을 주셨다. 내가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된 걸까, 이런 활동이나 직업은 ‘이상한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과거의 어떤 특정한 경험이 날 ‘이상하게’ 만든 걸까? 그건 내 피해망상일까? 나처럼 ‘이상한’ 사람이 많은지,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무엇일지, 혹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만 하는 것일지, 여기서 더 이상하지 않게 되려면 어떡하지.. 등등에 대한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일단 무조건적인 공감도 위로도 아닌 부정의 답을 주셨다. 그건 충격적이게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일단은 상담선생님이니까 이상하지 않다고 말씀해주시는 건지 의심하면서도 사실은 안도감이 들었던 건 분명하다.) 시끄럽기만 했던 내 머릿속을 조용하게 만들어주신 낯설고도 반가운 말씀.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의심도 많은 내게 수치적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인데,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검사들을 해보시고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말로 안 하셨다. 결국은 나 자신이 이상해 보일까 봐 내가 지나치게 걱정해왔고 그 걱정이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기도 빠듯한 머릿속에 굳이 안 좋은 것만 채워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넌 좀 이상한 애 같아.’라고 했던 누군가의 지나치는 말들도 흘려보내는 법을 모르고 모두 붙잡아 기억해 두었다는 것. 왜 그런 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반면, 누군가 나를 칭찬이라도 한다면 무척 기쁘기도 했고 감사했지만 속으로는 부정하려 애쓰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런 것들이 괴롭고 힘들어도 계속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괴로운 그 과정을 거쳐야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상담을 통해 나를 괴롭혔던 건 나에 대한 ‘나의 의심’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약 1년 정도 상담을 받으면서도 ‘이상한 사람’이라는 셀프 수식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늘 ‘이상하지 않다니까요.’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질문하셨는데 내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단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 의심하고 본 것. 남들이 보기에 난 이상할 거라는 생각만 근거 없이 확신했다는 걸 또다시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1년 넘게 진행된 상담 시간 내내 선생님께서는 내가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들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반복되는 의심에도 끊임없던 지지의 시간은 마침내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상담을 통해 긍정의 대답, 인정받는 경험을 얻은 나는 언제부터인가 정말로 내 생각을 과도하게 의심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구나,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