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리뷰 | 사와다 도모히로, 《마이너리티 디자인》
나는 한국인이다. 서울에 살며, 중산층이고, 4년제 대학을 나온 이십대 여성이다. 나에 대한 이 짧은 설명에서 약점을 찾아보라. 이중에선 아마 ‘여성’ 정도가 꼽힐 듯하다.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사건이 매일같이 보도되고, 2023년 현재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여성 참가자의 점수를 하향 조작하여 떨어뜨린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니 ‘여성’이라는 위치가 ‘약자’에서 아주 멀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아직 내 약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이번에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나는 공황장애 환자다. 이에 더해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고, 선천적으로 골반과 무릎이 기형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 나는 약자일까, 강자일까?
우문이다. 나는 강자이기도 약자이기도 하다. 경제적·지역적 기득권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집 앞 외출마저 힘들 때가 많고, 먹는 약이 하도 많아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말인즉슨 ‘쉬고 있다’는 뜻이다. 취업상태인 게 ‘정상’인 나이대에 일 년, 혹은 그 이상을 통으로 쉬는 건 사회통념에 맞지 않다고 여겨진다. 가끔 내가 면접장에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공백기가 꽤 긴데, 이 시간 동안 뭘 했나요?” “아파서 치료하며 지냈습니다.” 음, 경쟁력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취업시장에서 나는 가치가 떨어진 하등품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내내 손에 쥐고 있다. 내가 참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사와다 도모히로는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했고, 무려 8,000만 명에게 도달한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카피라이터로서 착실히 경력을 쌓던 중, 그에게 아들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다던 그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는 당황한다. 그의 아들은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아이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끝났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순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카피라이터로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카피라이터로서 살아왔기에 더욱 회의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저의 주된 일은 영상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여 광고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아름다운 광고를 만들어도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은 볼 수 없습니다.
“아빠는 무슨 일을 해요?”라는 물음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고민 끝에 그는 제일 먼저 사람을 만났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라고들 한다. 장애인을 사회활동에서 배제하는 사회임을 일컫는 표현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지, 그 역시 장애인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그래서 신문에 활자로서 존재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진짜 ‘사람’을 만나기로 한다. 그는 장애 당사자, 당사자의 가족, 당사자를 채용한 경영자를 포함해 3개월간 200여명의 사람을 만났다. 그가 마주한 미지의 세계는 매혹적이었다. 그는 “의외로 만나는 사람마다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자동차랑 부딪칠 뻔해서 피하다 넘어졌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는데, 의족이 똑 떨어진 거예요. 그걸 보고 운전하던 사람이 ‘꺄! 다리가 떨어졌어!’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바로 ‘아, 괜찮아요.’라면서 다리를 꾹 끼우니까 다시 ‘꺄!’ 하더라고요.”
이들과의 대화는 그로 하여금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인생을 그려보게 만들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삶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사고방식들을 발견했다. 특히 라이터가 발명된 이야기는 그에게 영감을 줬다. 한 손만으로는 성냥을 켤 수 없기 때문에 라이터가 발명되었다는 라이터의 탄생 비화. 그의 머릿속 전구가 켜졌다.
못하는 일을 억지로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회를 바꾸면 돼.
라이터와 비슷한 비화가 있는 발명품들이 있다. 구부러지는 빨대는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이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설, 시력이 나쁜 것을 장애라고 여겼던 과거에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안경이 이제는 패션 아이템이 된 일.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가 ‘마이너리티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는 ‘발명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약점의 재발견이다.
이후 그는 2014년 일반인 대상 시각장애인 축구 체험 행사에 ‘OFF T!ME(오프 타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이지 않아. 그뿐.”이라는 카피를 썼다. 그해 일본에서 개최한 시각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대회는 개막 전부터 완벽히 매진되며,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이외에도 다양한 소수자 중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 나갔다. 의족에 패션을 결합한 ‘절단 비너스 쇼’, 할아버지들을 모아 만든 보이밴드 ‘지팝’, 시각장애인과 보행장애인의 신체 공유 로봇 ‘NIN_NIN’ 등. 그는 ‘약점’에 얼마나 무수한 가능성이 있는지 발견했고 증명했다.
사와다 도모히로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유루스포츠(느슨한 스포츠)’다. 작가 본인에게 ‘운동을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는 데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못하면 야유를 듣고 놀림 당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잘함과 못함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고자 했다. 비누칠을 해 미끌미끌한 손으로 핸드볼을 하는 ‘핸드소프볼’이 예시다. 그는 세계유루스포츠협회를 창설, 현재까지 110종이 넘는 스포츠를 개발했다.
그는 이렇듯 소수자성을 확대하는 작업을 이행 중이다. 그는 약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무리해서 약점을 극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약점에는 누군가의 강점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으니까.
약점을 받아들이고, 사회로 들어가, 누군가의 강점과 손잡는다. 이것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싹트는 미래가 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내가 난데없이 내 약점을 까발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가. 당신은 ‘약점 없는’ ‘완벽한’ 사람인가? 우리 모두 각자의 약점에 주목해 보자. 우리 삶의 지평이 훨씬 더 넓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23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