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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워에 하는 출퇴근이란

I'm pregnant

아래는 임신 기간 중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어제의 일.

임신 후 출퇴근 시에 이용하는 대중교통(택시 포함)의 기억은 대부분의 경우가 끔찍한데, 어제도 그중 하나였다. 퇴근 무렵 비가 많이 왔고 나는 정시퇴근을 해서 러시아워에 걸려 택시 잡기도 만만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역으로 향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에 모여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임산부 배려석이 있는 문 쪽에서 열차를 기다렸으나 들어오는 열차는 이미 만차였기에  나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옆으로 살짝 물러났고 열차는 스펀지처럼 내 뒤에 줄 선 사람들을 빨아들인 후 떠났다. 아마 빨아들였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그 후 한 차례 더 열차를 떠나보내고 이제 맨 앞줄에 서있던 나는 더 이상 지체하긴 힘들다는 판단하에 상대적으로 조금 덜 붐비는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것도 잠시. 역시나 스펀지 같은 열차는 사람들을 계속 빨아들였고, 이미 만원인 지하철은 사람들 얼굴만 동동 떠다녔기에 나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배를 보호하려고 팔로 배를 가리며 그대로 임산부 배려석까지 밀고 들어갔다. 물론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도 그 옆에 앉아있던 건장한 청년도 나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 눈을 감거나 게임을 했다. 그럼 그렇지, 혹시나가 역시나. 마음을 비우면 조금 편한데 어제는 무수히 많은 날 중에도 너무나 힘든 하루였기에 나도 모르게 약간에 운을 바랐던 것. 그런데 갑자기 기대하지 않은 순간, 가운데쯤 앉아있던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분이 일어나 자기 자리를 내어주었다. 여기 앉으라고. 거절할 처지도 아니어서 그녀에게 몇 번이나 연거푸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밀려드는 순간의 안도.


비가 많이 와서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힘들게 여의도역까지 걸어가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신호등 숫자는 왜 이리도 빨리 카운트되는 건지. 지하철을 몇 대나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혹시나 배가 다칠까 염려하며 지하철에서도 무서워하다 자리에 앉으니 탁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눈 앞에 스쳐가는 내 처지를 생각하니, 갑자기 서러워져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오늘 하늘은 어제 나를 비웃듯이  매우 쾌청하다. 미세먼지 수치가 어제의 나를 비웃는 기분이다. 이건 정말 기분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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