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그림자에게서 나를 지키는 법

아직 망하지 않았다

by 정혜영



아직 망하지 않았다.


그 밤의 그림자에게서 나를 지키는 법


상담일지 #6


“선생님,

진짜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몰라요. 그런데...
밤마다 누가 와요. 처음엔 정말 멋졌어요.
연예인처럼 생긴 남자였거든요.

근데 점점... 그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감았다.


나는 조용히 그녀가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다렸다.

“처음엔 꿈인가 싶었는데,
몸이 안 움직였고, 소리도 안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낮에도 오기 시작했어요.”


그게 누구인가요? 남자친구?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에요?"


나는 살짝 놀랐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


30대 중반의 여성.
겉보기엔 조용하고 성실해 보이는 그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상하죠?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나중에는 제가 그 귀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사람하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런 황홀감이었어요.
내가, 미친 건가 보다, 생각도 해봤어요...”

그녀는 자책까지 하고 있었다.



귀접.
누군가는 미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정신과적 현상이라 진단한다.
하지만 상담자로서 내가 마주한 건
정신도, 몸도 모두 탈진한 한 사람의 깊은 외로움이었다.


“가서 굿하래요. 부적도 너무 비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죠. 토속신앙 쪽에서는.."

"저도 그쪽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음~~

저희 어머니가 하시는 걸 봤어요.!


팥의 향이 온 집안에 풍기도록 끓이셨어요

그 팥물을 마시기도 하고, 방구석구석 조금씩 뿌리시더라고요.

팥도 조금씩 놓아두시고,

그리하면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귀신도 나간다 하더라고요.

옛 조상님들이 그렇게 해오셨다고,

그렇게 한번 해보시겠어요?


그리고 며칠 후,


저... 팥을 사서 방구석마다 두고,
매일 팥물을 끓여요. 선생님이 알려주신 거니까 믿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그 후로는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여전히 한쪽 마음에서는 그 귀신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한 ‘팥’은 내가 전한 작은 제안이었다.

“어떤 방식이든,
당신이 주체적으로 '나는 지킬 수 있어'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건 진짜 힘이 돼요.
그 믿음이, 귀신보다 더 강할 수 있거든요."


그녀의 내면에는
상처받은 어린 자아가 숨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외롭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켜켜이 쌓인 흔적.

“그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고...”



나는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이 약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얼마나 혼자 버텼는지 알아요.
그리고 이제는,

그 밤의 그림자에게서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그녀는 지금,
하루에 한 번씩 직접 끓인 팥물을 천천히 마시며,
자신을 지키는 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두려움을 밀어내는 힘’이자

‘나를 회복시키는 주문’이 되기를 바란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나 반복되는 환상 속에 있다면,
먼저 말해주세요.

"괜찮다고."
"혼자서도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당신이 아직 망가지지 않았음을,
그리고 당신은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음을.






혼자서 지킬 수 있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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