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사회,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붙잡아야 하는가

아직 망하지 않았다.

by 정혜영


침묵하는 사회,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붙잡아야 하는가



그녀가 떠난 후, 저는 납골당의 차가운 유리벽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정말 필요했던 것은 '상담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저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

보통 사람의 따뜻한 눈빛' 하나면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절망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옵니다.

그녀처럼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고통을 꾹꾹 숨길 때,

비극은 조용히 시작되곤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의 마지막 속삭임은 결국"나를 혼자 두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던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두려운

그 질문을,

용기 내어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절망의 끝에 선 사람에게는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혹시 지금,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을 만큼 괴로운가요?"


우리가 그 질문을 건넬 때,

그것은 단순한 질문 그 이상이 됩니다.

"당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사랑의 선언이 되어주죠.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지만,

이 질문이 죽음을 부추기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혼자 두지 않는 누군가'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생명의 끈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섣부른 충고는 잠시 미뤄두세요.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명쾌한 해결책보다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힘내세요"라는 가벼운 위로 대신,

그저 그들의 곁에 묵묵히 앉아

그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는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여기, 당신 곁에 있을게요."


문제 해결은 그다음입니다.

먼저 그 짐을 함께 나눠 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녀에게 해주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모두 구할 수는 없죠.

사실 그녀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결함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그녀는 월 200만 원이라는 수입 때문에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했습니다.

가장으로서 필사적으로 일하면서도,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버린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이런 '돈의 절망'을 우리는 막아내야 합니다.


법이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사회의 틈새를 메워야 합니다.

위기에 처한 가장들이 수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더 유연하고 포괄적인 안전망이 절실합니다.

복잡한 서류 절차 없이,

위기 상황이 확인되는 순간 즉시

손을 내밀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더 가혹했던 것은 '시선의 폭력'이었습니다.

그녀의 밤의 삶을 폭로한 동료의 행동은,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회적 폭력'에 다름없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제 섣불리 '착하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도덕적 심판을 멈춰야 합니다.

그들의 선택 뒤에 숨겨진 절망의 깊이를 먼저 이해하려 애써야 합니다.

한 번의 실패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 영원한 낙인으로 남지 않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따뜻한 시선을 건네야 합니다.



저는 그녀의 납골당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끝맺지 않겠다고.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가 그 사람을 외면하고, 비난하고, 그의 고통을 무시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입니다.


우리가 자살을 막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막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이 세상이 당신의 고통을 인정하고,

당신의 존재 가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일입니다.


아직 망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명을 붙잡기 위해,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말을 걸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녀가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녀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남겨진 모든

'그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생명을 붙잡는 사람이 되기를....


이전 25화빈 의자와 상담사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