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화요일 오전 열 시. 진료실 문이 열렸다. 서른 대 초반 여자가 들어왔다. 임신복을 입고 있었다.
배가 불렀다. 여섯 달쯤 되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목소리가 밝았다. 나는 차트를 확인했다. 이수현. 삼십삼 세. 예약 내용: 보톡스.
"임신 중이신데 보톡스를 원하세요?"
"네. 가능하죠?"
"권장하지는 않아요. 태아에게 영향이..."
"괜찮아요. 제 친구도 임신 중에 맞았는데 아기 멀쩡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의학적으로는 비권장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금지가 아니다. 환자가 원한다면.
"보험 적용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카드로 할게요."
"백오십만 원인데요."
"괜찮아요."
수현은 의자에 앉았다. 배를 쓰다듬으며. 거울을 봤다.
"시댁 돌잔치가 다음 달이에요. 사진 많이 찍을 거 같아서."
"아기 돌잔치요?"
"아뇨. 시동생 애 돌잔치. 전 아직 안 낳았는데."
수현이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시댁에서 자꾸 비교하거든요. 시동생 며느리랑. 그 집은 애도 예쁘게 낳고, 엄마도 날씬하고. 전 이 꼴이고."
나는 주사기를 준비하며 물었다.
"남편 분은 뭐래요?"
"남편이요? 신경도 안 써요. 시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엄마 말이 맞아' 그러고."
시술을 시작했다. 바늘이 들어갔다. 수현은 움찔했지만 배를 계속 쓰다듬었다.
마치 아기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이.
"원장님."
"네."
"임신 중에 보톡스 맞으면 진짜 괜찮은 거 맞죠?"
이미 늦었다. 바늘은 이미 들어갔다. 나는 대답했다.
"의학적으로 명확한 연구는 없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심각한 부작용은 없고요."
"다행이다."
수현이 안도했다. 나는 계속 주사를 놓으며 생각했다. 다행인가. 정말?
시술이 끝났다. 수현이 일어서며 물었다.
"원장님은 애 있으세요?"
"딸 하나 있어요."
"몇 살이에요?"
"스물둘."
"우와, 저보다 어리네. 딸이 예뻐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 딸. 스물두 살. 편의점 알바. 비정규직. 예쁘냐고?
"그냥... 평범해요."
"그래도 딸이니까 예쁘죠."
수현이 웃으며 나갔다. 배를 쓰다듬으며. 나는 차트에 메모했다.
'이수현 / 33세 / 임신 6개월 / 보톡스 / 시댁 돌잔치 / "비교당함"'
그리고 마지막 줄에 작게 적었다.
'비권장 시술 진행함'
문이 다시 열렸다. 간호사 미경이 들어왔다.
"원장님, 다음 환자 오셨어요."
"누구?"
"이준혁 씨 부인이요."
이준혁. 나는 그 이름을 알았다. 단골 고객. 삼십 대 후반. 건물주 아들. 아니, 지금은 건물주 본인.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시면서 건물 일곱 채를 물려받았다.
"들어오세요."
삼십 대 중반 여자가 들어왔다. 명품 드레스. 명품 가방. 하지만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리프팅받으려고요."
리프팅. 나는 가격표를 확인했다. 울세라 리프팅. 팔백만 원.
"울세라 원하세요?"
"네. 제일 좋은 거요."
"자, 얼굴 좀 볼게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주름은 많지 않았다. 삼십오 세 여자의 자연스러운 얼굴.
하지만 피곤해 보였다. 주름이 아니라 피로.
"시술은 가능한데... 지금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할래요."
"이유가 있으세요?"
그녀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다음 주에 시댁 모임이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친척들 다 모이는."
"네."
"거기서 제가 제일 나이 많거든요. 시누들은 다 저보다 어리고. 자꾸 비교당해요. '나이 들어 보인다'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두 번째로 듣는 말. '비교당한다.'
"남편 분은 뭐래요?"
"남편이요?"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도 안 써요. 그냥 '알아서 하라'라고. 카드나 주고."
시술을 시작했다. 울세라. 초음파로 피부 깊숙이 열을 가해 콜라겐 재생을 유도하는. 시술 시간 한 시간.
그녀는 그 한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건지, 그냥 쉬는 건지.
시술이 끝났다. 그녀가 거울을 봤다. 효과는 한 달 후에나 나타난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워했다. 돈을 냈으니까.
"원장님, 감사합니다."
"천천히 가세요."
그녀가 일어서다 문득 물었다.
"원장님, 혹시 시댁 있으세요?"
"남편이 일찍 돌아가서요."
"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럼 시집살이는 안 해보셨네요."
"입니다만은."
"부러워요."
그녀가 나갔다. 팔백만 원 카드 결제 영수증이 출력됐다. 나는 차트에 메모했다.
'이준혁 부인 / 35세 / 울세라 800만 원 / 시댁 모임 /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 / 남편 무관심"'
오전 진료가 끝났다. 나는 잠시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두 여자가 떠올랐다.
수현: 임신 6개월, 보톡스 150만 원 준혁 부인: 울세라 800만 원
둘 다 시댁 때문에. 둘 다 비교당해서. 둘 다 남편은 무관심.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150만 원 + 800만 원 = 950만 원
오늘 오전 수익. 시댁 공포의 값.
오후 두 시. 나는 청파역 지하 이층에 있었다. 무료진료소. 대기실에 열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첫 번째 분."
간호사 미경이 불렀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경이 다시 불렀다.
"박민호 씨?"
그제야 한 남자가 움직였다. 휠체어를 탄 남자. 사십 대 초반쯤.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진료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네."
박민호는 이미 앉아 있었다. 휠체어에. 나는 어색하게 말을 바꿨다.
"편하게 계세요."
"네."
차트를 확인했다. 박민호. 사십이 세. 척수 손상. 하반신 마비. 첫 방문.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좀..."
민호가 엉덩이 뒤쪽을 가리켰다. 욕창이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생기는. 피부가 눌려서 괴사 되는.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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