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사다리 02화

제2화 - 화요일

사다리

by 정혜영


화요일


선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차트를 열었다.

이수현, 삼십삼 세, 보톡스 예약.

문이 열렸다.

여자가 들어왔다. 배가 불렀다. 여섯 달쯤 되어 보였다.

선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앉으세요."

"네, 원장님."

목소리가 밝았다. 하지만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임신 중이신데."

"괜찮죠? 친구도 맞았는데."

선미는 차트를 다시 확인했다. 보톡스. 임신 6개월. 그녀는 펜을 들었다가 놓았다.

"의학적으로는 권장하지 않아요."

"선생님."

수현이 거울을 봤다.

"다음 달에 시댁 가거든요."

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시댁. 그 단어면 충분했다.

"보험은 안 돼요."

"알아요."

"백오십만 원인데."

"카드로 할게요."

수현이 의자에 앉았다. 배를 쓰다듬으며. 선미는 주사기를 준비했다.

"시동생 애 돌잔치예요."

수현이 말했다. 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늘을 채웠다.

"전 아직 안 낳았는데. 시어머니가 자꾸 비교하시거든요. 시동생 며느리랑."

바늘이 들어갔다. 수현이 움찔했다. 배를 더 세게 쓰다듬었다.

"남편은 뭐래요?"

선미가 물었다. 수현이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남편이요? 신경도 안 써요. 시어머니 편만 들고."

시술이 끝났다. 수현이 거울을 봤다.

아직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만족스러워 보였다. 돈을 냈으니까.

"원장님은 애 있으세요?"

"딸 하나요."

"몇 살이에요?"

"스물둘."

"딸이 예뻐요?"

선미는 잠시 생각했다. 딸. 스물두 살. 편의점 알바. 대학 휴학. 예쁘냐고?

"평범해요."

"그래도 딸이니까 예쁘죠."

수현이 나갔다. 선미는 차트를 닫으며 작게 썼다. '비권장 시술 진행함'. 그리고 펜을 놓았다.

문이 다시 열렸다. 간호사 미경이었다.

"다음 환자 오셨어요."

"누구?"

"이준혁 씨 부인이요."

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혁. 작년에 아버지 장례식 때 조문을 갔었다.

빈소 한쪽에 놓인 부동산 서류 뭉치가 생각났다.

"들어오세요."

여자가 들어왔다. 명품 드레스였다. 명품 가방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첫 번째 환자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리프팅받으려고요."

"울세라요?"

"네. 제일 좋은 걸로요."

선미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주름은 거의 없었다. 삼십오 세 여자의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할래요."

"이유가 있으세요?"

여자가 잠시 침묵했다.

"다음 주에 시댁 모임이 있어요."

또 시댁이었다. 선미는 묻지 않았다.

"팔백만 원이에요."

"알아요."

시술을 시작했다. 초음파가 피부에 닿았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한 시간 동안 그대로 있었다.

시술이 끝났다. 여자가 일어서며 물었다.

"원장님, 시댁 있으세요?"

"남편이 일찍 돌아가서요."

"아... 부러워요."

여자가 나갔다. 선미는 영수증을 봤다. 팔백만 원. 카드 결제 완료.

오전 진료가 끝났다.

선미는 진료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영수증 두 장. 수현 씨 것. 준혁 부인 것.

백오십만 원. 팔백만 원.

그녀는 영수증을 서랍에 넣었다.  

오후가 되었다.

선미는 청파역 지하에 있었다. 무료진료소. 대기실에 열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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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주영. 감성과 상징,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를 쓰며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와 회복 사이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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