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목요일

사다리

by 정혜영


제3화: 목요일


오전 10시


지우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서류가 쌓여 있었다. 왼쪽이 두꺼웠다. 준혁 쪽. 오른쪽이 얇았다.


상가 주인 쪽.


지우는 왼쪽 서류를 펼쳤다. 계약서. 임대차 계약서. 권리금 특약 없음. 법적으로 명확했다.


오른쪽 서류를 펼쳤다. 진정서. 탄원서. 삼십이 년 장사했다는 증명. 하지만 법적 효력은 없었다.


지우는 펜을 들었다. 소송 준비 서면. 첫 문장을 썼다.


'피고들은 원고에게 권리금을 지급할 법적 의무가 없다.'


펜이 멈췄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변호사님, 저 김영수입니다."


분식집 할머니였다.


"네, 할머니."


"저기... 다음 주 화요일 재판이잖아요."


"네."


"제가 뭘 준비해야 해요?"


지우는 잠시 멈췄다.


"준비 안 하셔도 돼요. 제가 다 할게요."


"근데... 제 이야기하고 싶은데."


"할머니."


지우가 말을 끊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기기 어려워요."


전화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알아요."


"근데요, 변호사님."


"네."


"그래도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뭘요?"


"삼십이 년을 여기서 살았다고. 제 딸이 여기서 태어났다고. 제 손주도 여기 와서 떡볶이 먹었다고."


지우는 창밖을 봤다. 회색 빌딩들이 보였다.


"그래도 소용없어요. 법적으로는."


"알아요. 그래도."


할머니가 말을 멈췄다.


"그래도 말은 하고 싶어요."


지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판장에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소송 서면을 다시 봤다.


'피고들은 원고에게 권리금을 지급할 법적 의무가 없다.'


지우는 그 문장을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한 시간이 지났다.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오후 2시


선미는 진료를 마치고 대기실로 나왔다. 미경이 차를 건넸다.


"원장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고마워요."


"근데 아까 그분."


"누구?"


"박민호 씨요."


선미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욕창 심하던데... 쿠션 없으면 계속 악화될 거예요."


"그러게요."


"근데 살 돈이 없대요. 고시원 사는데."


선미는 창밖을 봤다. 청파역 출구가 보였다. 사람들이 오갔다.


"미경 씨."


"네?"


"쿠션 얼마예요? 제일 좋은 거."


"사십만 원쯤요."


선미는 잠시 생각했다. 오늘 아침 진료. 준혁 부인. 팔백만 원.


"제가 사드릴까요?"


미경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장님이요?"


"네."


"근데... 환자분이 받으실까요?"


"모르죠. 그래도."


선미는 휴대폰을 꺼냈다. 민호의 번호를 찾았다. 진료 기록에 남아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렸다. 한참 후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민호 씨, 저 한선미 의사예요."


"... 네."


"저기... 쿠션 말인데요."


민호는 잠시 멈췄다.


"제가..."


선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사드릴까 해서요."


"..."


"받으시겠어요?"


민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선미는 기다렸다. 한참.


"왜요?"


민호가 물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선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 모른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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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멈추지 않고 무너진 문장을 다시쓰는 네오 크리에이터(Neo-Creator) 리라이프작가(Re-Life)정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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