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선미는 강남 병원 2층 창가에 서 있었다. 아래로 거리가 보였다.
외제차들. 명품 쇼핑백을 든 사람들. 겨울 햇살이 유리에 부딪혔다.
"원장님."
미경의 목소리였다.
"다음 환자 오셨어요."
"누구?"
"신규예요. 최유진 씨."
선미는 창가를 떠났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렸다.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화장이 진했다.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다. 짝퉁 같았다.
"앉으세요."
"네."
여자가 앉았다. 거울을 봤다. 오래 봤다.
"어떤 시술 원하세요?"
"보톡스요. 필러도요. 리프팅도요."
선미는 차트를 봤다. 최유진. 스물아홉세. 직업란이 비어 있었다.
"다 하시려고요?"
"네. 얼마예요?"
"보톡스 백오십, 필러 이백, 리프팅은 팔백인데."
"천백오십?"
유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할부 돼요?"
"카드사마다 다른데."
"육 개월이요?"
선미는 유진의 얼굴을 봤다. 주름이 거의 없었다. 이십 대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필요해요."
"왜요?"
유진이 잠시 침묵했다.
"소개팅 있어요."
"소개팅이요?"
"네. 앱으로요. 근데 상대가... 조건이 좋아서요."
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이랑 실물이 달라서요. 더 예뻐 보여야 해요."
"조건이 어떤데요?"
"재벌 아들이래요. 서른다섯. 건물 몇 채 있대요."
선미는 펜을 들었다가 놓았다.
"그 사람이 원하는 거예요? 시술?"
"아뇨. 제가요."
"..."
"이번이 마지막 기회 같아서요. 나이도 이제 서른인데."
선미는 유진을 봤다. 스물아홉. 마지막 기회.
"생각 좀 더 해보시고 오세요."
"아니에요. 할래요. 오늘."
"천백오십만 원이에요."
"알아요. 카드 되죠?"
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술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오후.
지우는 사무실에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청파역 재개발 건. 다른 사건들.
노트북을 열었다. 이메일. 읽지 않은 메일 37개.
하나씩 열었다. 닫았다. 집중이 안 됐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변호사님, 저 김영수입니다."
분식집 할머니였다.
"네, 할머니."
"저기... 다음 달 재판 때 말인데요."
"네."
"혹시 제가 직접 말할 수 있을까요? 판사님한테."
지우는 잠시 멈췄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왜요?"
"재판은 변호사가 대리하는 거라서."
"그래도 제 이야기를 직접..."
"할머니."
지우가 말을 끊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기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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