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머무는 방식

<마음을 채우는 작은생각 #5>

by 여의도겨울바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사람 사이의 인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연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내가 기대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쌓였고, 추억도 많았고,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이 비슷할 거라 믿었다.

나는 생일이나 명절, 연말이 되면 안부를 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연락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운함은 조금씩 쌓여갔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반대로, 전혀 다른 인연도 있다.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던 관계였는데,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큰 말을 하지 않아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태도는 분명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이 오히려 오래 남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둘과는 또 다른 방식의 인연들도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고, 서로의 일상을 세세히 알고 있는 사이도 아니다.

1~2년에 한 번쯤, 어쩌다 마주치듯 만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관계에서는 누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누가 먼저 연락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에게 기대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인연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매년 연말이 되면 전화번호를 한 번씩 정리한다.

단순히 연락처만 주고받았던 사람들, 오랜 기간 동안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았던 사람들.
그 번호들을 담담하게 삭제한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음이 아주 가볍지만은 않다.
조금은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하게 홀가분한 느낌이 남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인연을 완전히 지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이 다시 연결될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연락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잠시 닿지 않을 뿐, 인연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관계를 붙잡아 두는 것보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관계들을 조금 더 잘 바라보고 싶어진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왔던 사람들,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관계들.
그 인연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금 더 정성스럽게 다루고 싶어진다.

인연은 억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닿는 속도로 자연스럽게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라지는 인연보다,

남아 있는 인연을 조금 더 아껴가기로 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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