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중력과 궤도

<마음을 채우는 작은생각 #6>

by 여의도겨울바람

우리는 흔히 관계를 기브&테이크의 등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내가 이만큼의 마음을 내어주었으니,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밀도의 마음을 돌려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경험이 쌓이며 깨닫게 된 서글프고도 명확한 진실은,

관계에는 필연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밀도가 ‘10’ 이라면, 상대가 느끼는 밀도는 ‘3’ 일 수 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용량이 다르고,

삶에서 관계가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의 눈높이가 완벽히 일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시작부터 불가능한 평행선을 긋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밀도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비로소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젊은 날의 나는 관계의 허브 역할을 자처했다.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고, 약속 장소를 정하고, 대화의 끊김을 메우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을 때 묘한 보람을 느꼈다.

친구들이 "역시 네가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해줄 때면,

그 인정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역할은 훈장이 아닌 짐이 되었다.

누군가를 연결하기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컸고,

정작 그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이 쉴 자리는 좁아졌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멈춰버릴 관계들을 바라보며 문득 허망함이 밀려왔다.

보람 뒤에 숨어 있던 귀찮음과 피곤함이 고개를 들 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걸까?'

모든 관계가 같은 정도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관계라는 시스템이 계속해서 동력을 공급해야만 유지되는 것이라면,

가끔은 멈추게 두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관계는 단순히 너와 나라는 일대 일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회사나 조직 같은 특정한 무대 위에서 배역을 맡아 관계를 형성한다.

그 안에서는 매일 점심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처럼 지내지만,

무대의 막이 내리는 순간(퇴사, 이직 등) 그 견고해 보이던 관계들은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는 그 목적이 다하면 자연스레 소멸한다.

그것은 비정함이 아니라 관계의 섭리다.

우리는 서로가 좋아서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공통의 궤도를 돌고 있었던 행성들이었기 때문이다.

궤도가 달라지면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서운해하기보다,

그 무대 위에서 서로에게 충실했던 시간 자체로 예우하며 보내주면 그만이다.


이제 나는 모든 관계를 같은 무게로 붙잡기보다는,

각 관계가 머무를 자리를 그만큼의 거리에서 존중하려 한다.

내 삶의 에너지는 유한하며,

이제는 그 에너지를 분산이 아닌 집중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모든 모임의 중심이 되려던 욕심을 내려놓는다.

대신, 사회적 가면을 벗고도 나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소수의 관계,

굳이 내가 중심이 되거나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가는 편안한 관계에 더 많은 마음을 할애하고 싶다.


관계의 비대칭성을 수용하고,

환경이 만들어낸 친밀감을 구분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은 가벼워진다.

이제 나는 더 넓은 인간관계 대신, 더 깊은 관계를 선택하기로 한다.

관계는 붙잡는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 위에서

비로소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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