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방향

<마음을 채우는 작은생각 #7>

by 여의도겨울바람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

서로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은 각자의 생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쏘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사람을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관계를 바꾸었던 결정적인 순간들은,

누군가 말을 잘했을 때가 아니라 나의 서툰 말을 제대로 들어주었을 때였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침묵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많은 경우 우리는 듣는 척하며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한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생각을 꺼낼 타이밍을 재고,

머릿속으로 반박의 논리를 쌓는다.

대화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메시지를 각자 일방적으로 던지고 있는 셈이다.

대화가 피곤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화는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보다,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떤 기분으로 도착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의 의도가 정중했다고 해서 결과까지 다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도가 같다고 해서 결과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화에는 내 입장보다 상대의 자리가 먼저 놓여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소화할 수 있는 말인지,

지금 그의 마음에 그 말을 담아낼 여백이 있는지를 한 번 더 살피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옳은 말을 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대화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재판석이 아니라,

서로의 상황과 맥락을 조금씩 맞춰가는 과정이다.

역지사지와 배려는 거창한 도덕적 교훈이라기보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말을 줄이고 듣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대화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조급함이 줄어들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남는다.

모든 대화가 합의나 결론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된다.

어쩌면 대화의 목적은 상대를 바꾸거나 정답을 도출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도 우리가 여전히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말을 더 잘하려 하기보다, 조금 더 잘 듣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대화가 끝난 뒤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그 대화는 이미 충분한 역할을 다한 것일 수도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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