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습니까_1화
여행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쩌다 한번 떠나면 몇 달은 쉬어야 한다. 돌아오고 나서도 금방 훌쩍훌쩍 떠나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여행 자체를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2년 전쯤, 혼자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졸업영화를 막 끝내고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바닷바람을 쐬며 그저 쉬고 싶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인 추천의 숙소를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일주일이나 연박으로 예약을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났다.
문제는 발생했다. 도착을 해서 어디선가 대충 들은 명소들을 검색해서 돌아다녔는데, 그때 당시 면허가 없었던 나는 예상치도 못한 교통비를 지출했다. 무계획의 패해다. 그렇게 이틀 정도 지나자 혼자 하는 여행이 재미가 없어졌다. 아무런 계획이 없으니 당장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았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바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숙소와 가까운 고등어구이 전문점에서 4일 내내 밥을 먹었다. 고등어는 참 맛있었다.
일주일이라는 긴 여행을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고등어'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면 '제주도에는 고등어가 참 맛있어요'라는 말만 한다. 그 이상은 할 말이 없다. 더 최악이었던 것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예약했던 날짜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상당한 금액의 수수료를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그랬을까.
그날 이후로 나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유럽 여행도 동행이 없다. 분명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고등어 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고등어만 매일 먹었다. 두 번 다시 내 여행을 망치게 버려둘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길을 잃으면 그 누구도 나를 구출해줄 수가 없다. 최소한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를 덜 고생시키고, 나에게 좀 더 많은 명소와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촘촘한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 이런 나를 보며 한 친구는 '논문'을 쓰냐며 농담 삼아 던지곤 했다. 그러하다. 나는 18일 여행의 준비를 약 3개월 동안 했으며 가이드 북을 6권을 완독 했다. 이것은 내가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같다.
동유럽 3개국
여행지를 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여성이 홀로 여행하기 안전한 곳,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이 적절하게 있고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유명 영화 촬영지도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곳.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렇게 세 곳을 가기로 정했다.
나에게 여행 계획이란 '생존'과도 관련되어 있다. 무엇이든 놓치면 최악이 오는 생각이 먼저 왔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공부를 매일 했다. 사실 비행기를 끊고 나서 가끔 후회가 되기도 했다. '울면서 걷다 (2019)'의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나에게는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이 있다. 납치되는 상상, 길을 잃어서 밖에서 노숙하는 상상, 돈을 다 잃어버리는 상상. 두려움에 여행을 포기하려고 했다. 취소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모두 몰살시켜버리고 다시 설레게 했던 원인이 있다.
'아니, 22번 트램을 타고 성을 올라가면 인생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단돈 4만 원에 오케스트라 연주와 연극 무대를 함께 볼 수 있는 오페라를 예약할 수 있다고?'
가이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먼저 경험한 자의 생생한 기록이 나를 설레게 했다. 무서움, 두려움 따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빨리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더 나아가서는 왜 조금 더 일찍 갈 생각을 못했을까, 라는 안타까움까지 들었다.
떠나기 한 달 전, 꽃보다 할배(동유럽 편)를 다시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볼프강 산악 열차를 타며 할배들은 이야기한다.
'내 죽기 전에 이런 풍경을 보게 되다니. 놀랍다, 놀라워. 분명 마지막일 거야.'
다른 것은 모르겠다. 진짜 길을 헤맬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고 납치가 될 수도 있고 돈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도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서 그 나라만이 지닌 고유의 자연물을 보며 감동받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3개월을 후회하고, 고민하면서도 여행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스물아홉, 나홀로 유럽 여행을 선택한 바로 이 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잘한 일,
가장 용기를 낸 일로 기억될 것임을.
그리고 그 직감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이 길이 맞습니까' 제 2화-프라하 1일 차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