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동네에서도 종종 길을 잃곤 했다.
왜 102동 옆에는 101동이 없고, 100동이 없는 것인지. 뒤죽 박죽으로 되어 있는 미로 같은 아파트 단지를 서성이며 마음은 급해지고 다리는 무거워졌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몰려올 때마다 내 몸이 플라스틱이 되는 것 같았다. 당황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얘지면, 피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텅 빈 플라스틱이다. 뇌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몸이 가볍다. 어딘가에 부딪혀도 퉁, 소리와 함께 그대로 굴러갈 것만 같은.
그래서 혼자 하는 국내 여행도 두려웠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을 할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분명 멀쩡한 인간이다. 식당에 가서 밥도 사 먹을 수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항의할 줄도 아는, 팔다리가 적당하게 달린 평범한 스물아홉 여자이다. 그런데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아무것도 상상이 안 간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교통권을 끊고 예약한 숙소까지 찾아가는, 그 여정마저도 두려움이다. 서른이 내일모레인데, 바보 같은 상상인가. 방학을 맞이하는 젊은이들도 돈을 모아 배낭여행을 떠나는 세상에. 그럴 수도 있겠다.
선천적으로 길치에 방향치다. 휴대폰 속 지도에 의존하다가 주변을 보지 못해 몇 번 큰일 날 뻔한 적이 있다. 집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 그 위험성을 뚫고 울부짖으며 익숙한 곳을 떠나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란 무엇인가. 앞자리가 바뀌기 전에는, 반드시 유럽여행을 가고 싶었다. 이건 나만의 또 다른 개똥철학이다. How old are you? (몇 살이세요?) I'm 투엔티....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외국인도 내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를 하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항공편을 예약했고,
떠나기 전날까지 괜한 짓을 했다며 후회를 했다. 온갖 최악을 상상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나는 유럽여행을 18일간 떠났고, 현재 집에 무사히 돌아온 상태이다. 나는 수없이 길을 헤맸고 방황했으며 하루 종일 굶은 채 걸어다니기도 했다. 늦은 밤에 도착한 숙소 대문이 열리지 않아 가슴이 두근댔던 적도 있었으며, 낯선 침입자로 인해 위험할 뻔한 상황도 있었고 공원에서 수돗물을 마시다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이 모든 것은 여행에서 그리 중요한 일로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 그 이상의 감격스러운 순간들이 나를 지금도 설레게 하고 있다.
'이 길이 맞습니까'라고, 수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곤 했던, 18일간의 유럽 여행기를 열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서 적어보려고 한다. (원래는 17일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하루가 늘어났다.) 이기록은 나에게도 언젠가 기억을 회상시켜줄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다.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