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습니까 5화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어느 도시에서 몇 박을 묵을지에 대한 것들이다. 차라리 나라를 선택하기는 쉽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접하면서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어떤 '이미지'로 인해 그 나라를 한 번쯤 꼭 가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 이 나라로 정했어! 라며 비행기를 예매해버리면 하루 정도는 뭔가 거대한 결심을 이룬 듯 매우 후련하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도시에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지? 몇 개의 도시를 가야 하지? 도시 간의 이동 수단과 시간은?
사람마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같은 여행지라도 누군가는 극찬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여행이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 변수들로 하여금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가 있다. 누군가는 숙박을 하지 않고 당일치기로 가도 충분하다 말하고, 누군가는 일주일 머물러도 모자라다고 한다. 이미 여행을 다녀온 가까운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저마다 감상이 달랐기에 나에게는 더 혼란만 왔다.
비엔나를 5박씩이나? 진짜 할 것 없어!
오스트리아는 유난히 내가 가장 끌렸던 나라였다. 아마 동유럽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오스트리아의 영향이 컸다. 모차르트를 포함하여 여러 유명 작곡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에서 한 번쯤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고 싶었다. 할슈타트, 오버트라운이라는 아름답고 동화 같은 섬을 포함하여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잘츠부르크와 오페라가 열리는 '비엔나'라는 도시도 무척 끌렸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오스트리아의 일정을 짜면서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하고 짜릿하고 설렜다. 내게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기에 잘츠부르크 2박, 오버트라운 2박, 비엔나 5박 일정을 짰다. 일정에 대한 엄청난 사전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남들의 조언은 모두 무시한 채 온전히 끌리는 대로, 내 마음대로 짠 일정이다.
그렇게 오스트리아에서의 일정을 계획하고서 이미 다녀간 지인들을 만나면, 작은 섬에서 2박을 하는 것에 대한 반박이 많았다. 심지어 비엔나에서는, 2박으로도 지루했었다는 지인도 있었다. 나름 신나서 짠 일정이었는데, 지루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김이 새긴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세상 가장 강력한 청개구리다. 나에게 맞는 여행인지, 조금은 아쉬운 여행인지는 직접 경험하고 판단을 내릴 테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갈 곳이 없다면야 시집 한 권을 들고 가서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며 시집을 읽으면 된다. 비록 한 곳을 가더라도 천천히 여유롭게, 가는 과정과 오는 과정도 생각해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잘츠부르크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처음 국경을 넘어갈 때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정류장을 못 찾아서 1시간 동안 캐리어를 끌고 땀을 뻘뻘 흘렸었다. 그때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던 한국인 부부가 아니었다면, 체코에서 며칠 더 체류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길치입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날에는 정말 아무 일정도 잡아놔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4시간 동안 달려오면 뭣 하는가. 숙소까지 지도를 보며 찾아가야만 한다. 아무리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며 걸어도 숙소의 이름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아침에 빵 한 조각을 먹은 이후에는 끼니를 챙겨 먹지 못했다. 해는 쨍쨍하고, 땀은 흐르고 있고, 어깨에는 무거운 백팩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백팩 안에 들어있는 필름 카메라를 정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헤매는 사이에 한 식당의 웨이터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으로 어느 건물을 가리켰다. 내가 서 있었던 바로 뒤에 입구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길치입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미리 검색해놓은 한식당으로 향했다. 유럽 여행에 온 지 3일 만에 마음속으로 '김치찌개'를 외치며 달려왔다. 한식당 위치와 메뉴까지 선정하고 온 상태라, 이미 내 위장은 김치찌개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하얀 밥과 빨간 찌개를 보자마자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어떻게 먹으면서도 배가 고플 수가 있는가? 한입 먹을 때마다 허기짐이 가시질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공기도 다 먹지 못하는, 입 짧은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두 공기씩이나 싹싹 비워서 먹었다.
행복
행복, 정말 별 것 없다. 고단한 하루 뒤에 시원한 맥주 한 입,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의 3주간의 유럽여행은 늘 그랬다. 길을 잃고, 길을 다시 찾고, 무언가를 놓치고, 또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반복된 하루 뒤에 먹는 차가운 물 한 모금이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했다. 물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샤워를 한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시원한 손선풍기로 얼굴을 말릴 때의 그 행복감을 잊을 수가 없다. 혼자였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찾아야만 했고,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늘 목이 말라있었고, 늘 배가 고팠고, 자주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 많은 것들을 참고 견뎠을 때, 마지막에는 보상처럼 주어지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1박이 끝났다. 이동하고, 숙소에 가고, 밥을 먹고 누웠는데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내 인생 가장 도전적인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길이 맞습니까 6화_오스트리아 2일 차로 돌아올게요. :)
일주일에 한편씩 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흑흑
길치 드림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당신! 꿀팁 드릴게요.
제 첫 그림에세이집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
"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고난에 울더라도 뒤로 가지는 말자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
https://brunch.co.kr/publish/book/1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