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 겨울이 사라지고 오늘은 드디어 대학교 첫 수업이 있는 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성지우, 그토록 바라던 캠퍼스 생활이 두근거려서 밤잠을 설쳤다.
모두들 엄청 꾸미고들 오겠지? 지우는 친구들과 주말에 미리 사두었던 옷들을 펼쳐놓고 고민에 빠진다.
처음으로 화장이라는 것도 해본다. 뭔가 성에 차지 않는지 그 위에 계속 덧칠을 한다. 덧칠을 하면 할수록 얼굴은 새 하얗게 뜬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생각에 기쁘기만 하다.
하지만 그 기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휩싸인다. 대학생이라는 것이, 이런 차림이 아니었나.
지우는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빨간 구두에, 하늘하늘한 원피스. 그리고 과한 화장까지.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수수한 차림의 학생들을 보고 민망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만 빼고 모두들 이미 다 친해져 있는 듯하다.
지우,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온 우주인처럼 느껴진다.
벗어나고 싶다, 숨어버리고 싶다.
첫 강의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은 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뒷문으로 재빠르게 나가버리는 지우.
따뜻한 햇살, 벚꽃이 흩날린다. 지우는 집으로 돌아가려다 갑자기 허무한 기분이 들어 캠퍼스를 거닐며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에이, 그래. 누가 보면 어때. 이미 망쳐버렸어.
산책을 하면서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걸어본다. 새빨간 입술을 지우고 립밤을 바른다. 하나씩 본인의 모습을 돌아가는 지우.
이때, 누군가 지우를 부른다.
성지우?
지우, 뒤를 돌아본다. 중학교 때 부반장이었던 윤범준? 조용하고 뒷자리에서 책만 읽었던 범준이. 그땐 굉장히 삭았다고 생각했는데, 못 알아볼 정도로 말끔해진 얼굴이다. 꽤 멋있어졌네.
윤범준? 너 여기 다녀?
응. 여기서 어떻게 너랑 딱 만나냐.
우리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네, 맞나?
지우, 딱히 범준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범준과의 짧은 일화가 떠오른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한 번은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줬는데, 처음으로 남자가 자신을 데려다줬다는 것에 설레었던 기억이 흐른다. 그래, 범준이가 그냥 남자여서 설렌 거지 딱히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 그래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조금 더 얘기를 해볼까 다가가려다 금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그러니까.... 아, 난 수업 가야 돼서.
다음에 또 봐.
지우, 비밀이라도 들킨 듯 도망가려는 찰나.
너 많이 이뻐졌다.
뭐야, 예쁘긴..
지우, 당황해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감출 수 없다.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고 순수한 얼굴의 지우,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범준, 예전부터 지우를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를 보는 눈빛이 참, 사랑스럽다.
생글생글한 그의 미소가 분홍색 꽃잎들에 쌓여 향연을 이룬다.
그렇게 봄날의 첫 새 학기. 둘은 마주 보고 서있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최영미
yeoulha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