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고양이는 너야

미안해 사실 나야

by 여미

처음으로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작년 겨울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의 나는 한 제작사의 PD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하는 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편집을 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편집만 했으면 다행이었건만, 매일같이 반갑지 않은 이벤트가 일어났다. 메인 PD와 회사 대표, 그리고 이 모든 권력을 쥔 채널의 팽팽한 기싸움에 새우 한 마리가 껴있었는데 그 새우가 바로 나였다. 말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면 기분이 상할 것이 뻔했지만, 또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았다. 얽히고설킨 투자관계와 갑을관계 속에서 늘 전전긍긍했던 새우는 말라비틀어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때 메인 PD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한PD는 중간 도망은 안 갈 것 같아


사실 마음속으로 언제 도망을 갈까, 각을 재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이상 도망가기도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어 보인다는 칭찬으로 들려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PD, 참 똑똑하다) 그리고 내가 계획했던 중간 도망이 늘 실패했던 이유는, 편집실에서 먹었던 피자와 치킨에 언제나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같은 또래의 조연출, 막내 작가와 배달시켜 먹었던 야식이 그렇게 맛있었다.


나는 스물아홉의 평범한 여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을 앓았다. 안 그래도 빼빼로, 젓가락, 면봉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몸이 아프면 살이 더 빠졌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도 단 한 번도 살이 쪄본 적이 없었다. 조금 큰 옷을 입고 걸어 다니면 바람이 이곳저곳을 관통하여 온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마른 것보다 건강한 육체를 늘 원했다.


그러던 내가 29년 만에 처음으로 살이 쪘다. 그것도 10kg 씩이나. 매일 앉아서 야근을 하고, 가끔 울고, 가끔 껄껄 웃다가, 새벽에는 피자와 치킨, 스파게티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떻게 같은 음식을 그렇게 매일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입에 잘 맞았다.


프리사이즈는 없나요?


이전에는 하의 사이즈를 XS로 입어도 가끔 흘러내렸었다. 딱 맞는 스커트나 바지를 찾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M을 입어도 배가 살짝 쪼인다. 프리사이즈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다. 살이 찌기 시작하니, 주변 친구들부터 이런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훨씬 보기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를 보며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축하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뭐,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의 소원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것만 보장된다면 마른 몸을 과감히 버리고 살이 찌고 싶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잔병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신장염 검사를 했는데, 수치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의사는 나보고 이대로만 유지하자고 당부했다.


살면서 몸무게의 변화를 느낀 적이 없으니 체중계를 집에서 재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살이 찌는구나, 라는 것을 의식을 하면서부터 생각이 날 때마다 몸무게를 잰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1kg씩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고도의 심리전으로 나를 묶어놓았던 그 메인 PD의 발언(?)대로 중간 도망은 안 갔으나, 모든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완전 도망을 갔다. 그러나 나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자연스럽게 새벽이 되면 배달집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입이 짧기로 소문이 났던 나였는데, 어느새 닭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고 있고 말이다.


아니, 살찌는 것은 좋은데.... 끝이 있는 거겠지?


보기 좋게 살이 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한계 없이 찌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어젯밤, 닭볶음탕에 밥을 든든하게 먹고 잠에 들었다.


뚱뚱한 고양이는 너야


최근에 '거대 고양이'라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다. 식탐이 많고 하는 일 없이 누워있어서 거대해진 고양이를 뜻한다. (우리 집 고양이다) 갑자기 내가 왜 뚱뚱한 고양이를 그리고 있나, 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못하고 있었다. 거대 고양이로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이리저리 궁리하는 것이 지금의 낙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고양이가 아니다.


바로 나였다.


뚱뚱한 고양이는 너와 나야

You and I....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 yeomi_writer


그래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