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짝사랑 중입니다만

그 무엇이라도

by 여미
한여울씨 되시죠?


가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괜히 기대감을 안고 받게 된다. 그냥 내 이름을 확인 차 불렀을 뿐인데도, 내 영화가 어디선가 상영되었다는 소식을 내심 기대하며 받게 된다. 대부분 배급사를 거쳐서 소식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감독에게 다이렉트로 연락을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제 2년 남짓 돌고 돌았고, 주요한 영화제는 다 끝난 터라, 초청 소식이 뜸해지는 시기이기도 해서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를 받았을 때는 혼돈의 여름 끝자락인 8월 중순 즈음이었다.


방송국에서 2년 일하고, 스물여섯에 영화를 공부하려고 다시 서울 소재의 학교로 들어갔다. 졸업을 했더니 스물여덟이 되었고, 다시 취업을 하여 이름 있는 기업에서 PD로 일했다. 입사하자마자 해외로 출장을 갔고, 매일 편집하느라 야근했고, 울고불고(?) 그러는 사이에 틈틈이 글을 써서 나의 첫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회사는 8개월 남짓 다녔을까, 그만두었다.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경험치는 다 쌓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내 계획은 영상을 만드는 곳에서 3년 정도 경력을 쌓고 모아둔 돈으로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다시 나그네가 되어버렸다.


스물아홉의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내가 보고 느꼈던 세계보다 그 이상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삶의 행복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와서는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매일 영어공부를 했다. 모아놓은 돈을 계속 학원비로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영상편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한 지 5일 만에 짤리고 말았다. 스타트업 유튜버를 꿈꾸는 한 청년사업가의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편집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출근하니 자막까지 치는 일을 요구했다. 처음과 말이 달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빠듯한 일정 안에 자막과 편집일을 동시에 마무리하기에는 어려우니 조율을 다시 해보자고 했더니 바로 짤리고 말았다. 어찌 됐든 일한 만큼 보수는 바로 보내준다 하기에 알겠다고 했다.


뭐, 내가 심하게 까탈스럽게 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판단도 빠르고 결단력도 빠르고 입금도 빨랐다. 덤덤하게 알겠다고 하자마자 30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됐다. 회사를 나오니 간단한 일조차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다시 구해야 하나, 어쩌나 했을 때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한여울 씨, 지금 일을 하고 있나요?


그녀는 내가 졸업한 학교의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였다. 나는 영화과를 졸업했고, 만화애니메이션과는 수업도 들은 적이 없고 교수님도 알지 못한다. 어디선가 내 경력을 보고 전화를 거셨다. 자신을 최교수라고 소개한 그녀는 내가 이전에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었다는 이력을 좋게 보고 조교직을 제안했다. 운 좋게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때의 나로서는 혼돈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원을 준비해야 하나,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나, 그래도 영어학원은 꼭 다니고 싶었다. 조교로 근무를 하면 오후 5시 반에는 칼퇴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일단은 당장의 생활비도 필요하고, 저녁에 학원을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 학교로 갔다. 졸업하고 1년 만에 간 학교에서 후배나 동기를 마주칠까 봐 걱정했지만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실 마주쳐도 상관은 없긴 했는데 괜히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혼자 복잡해지고 그랬다. 교수님은 공부를 하면서 근무를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바로 다음날 임용이 되어 자대에서 조교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기대하는 초청 소식은 아니었지만, 교수님께 일을 직접 제안을 받았다는 것도 나름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 일이 끊기자마자 일을 다시 구할 수 있었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 화살이 나였는 지조차도.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학교는 집에서 20분 거리여서 출퇴근하기도 편했다. 9시에 출근해서는 오전 시간은 대부분 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학교 카페에서 커피를 사와서 아침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내가 있는 사무실은 교수님들이 회의용으로 쓰는 작은 사무공간이었는데, 학생 신분일 때와 조교 신분으로 있을 때 대우가 확실히 달랐다. 어느 교수님이든, 나를 마주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셨다. 덕분에 여러 교수님들과 친분도 쌓이고 친해질 수 있었다. 오후에는 가끔 교수님의 심부름을 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영어 공부를 했다. 학교에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교직원도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대여기간이 무려 30일이었다. 졸업생은 출입만 되고, 책을 대여할 수는 없었다. 졸업생에서 교직원으로 승급한(?) 나에게는 최상의 복지였다. 교직원 사원증이 나오자마자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많으면 일주일에 3권씩 책을 빌려서 읽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으로 갔다.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어서 학원에 가기 전에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수업을 듣고 2시간 동안 영어 스터디를 하고 집에 가면 밤 11시 30분 정도 되었다. 간단하게 요가로 운동을 하고 바로 잠에 들었다. 이 생활을 3개월 내내 꼬박꼬박 했다. 나의 스물아홉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주변에는 한 회사도 오랫동안 잘 다니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는데 내 인생은 왜 이리 한 치 앞도 모르겠는지. 나에게 안정감이란 언제 찾아오는 것인지.


금방 겨울이 되었고 조교도 약속한 날짜까지 근무를 하고 끝났다.

영어공부는 5개월 동안 꾸준히 하니 이제는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방식을 터득하고 매일 독학 중이다.

조금씩 매일매일 하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이 되니 나만의 재밌는 놀이가 되었다. 내년 7월까지는 이를 악물고 할 거다. 그때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1년째 된다. 학원 선생님이 1년은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통 다른 사람 말은 잘 안 믿는데 전문가 말은 격하게 믿는다. (응?)

다음 여행지에서 외국인과도 맥주 한 잔 하면서 떠드는 게 소원이다. 그 외에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아무도 몰랐을 거다.

한 달 뒤면 나는 30대에 들어갈 것인데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을 줄은.

다시 나그네로 돌아왔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20대에 경험했던 일들이 30대를 결정하고, 30대에 이루었던 것들이 40대를 결정한다는 말이

스물아홉의 내가 되어서야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내 20대는 창작이라는 열망과 과정과 결과와 작은 성취들로 채워졌고 그 동기부여가 지금의 나를 이끌고 왔을 것이므로.

처음의 믿었던 내 확신이 도망가려고 할 때마다 쫒아가서 부여잡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다음 영화를 제작할 날이 올까.

영화안에서 내 쓰임새를 찾고 길이길이 밥벌이로도 생활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제발, 부탁이니 멀리 가지 말아 달라고.

내가 더 잘하고 더 사랑을 줄테니까 옆에 있어달라고.

기회를 잡을 날이 분명 올 테니 기다려달라고.


최근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조여정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이다.

짝사랑.

결국 짝사랑이니까.

더 열심히 쫓아가서 사랑해야지.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매일 짝사랑중입니다.


여러분도 짝사랑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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