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라
_너는 그림을 왜 그려?
_왜 그리냐니?
_그냥, 그림 그리는 네 모습은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도 않아서.
_나도 잘 모르겠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내 밥벌이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_일종의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걸까.
_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어감은 나한테는 뭔가 맞지 않는 같아. 내가 생각하는 취미라는 것은,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생겨서 하나씩 배워나가며 소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데 그보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조금 더 내 몸의 어떤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 사실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실력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뛰어난 그림쟁이가 되어야겠다, 뭐 그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그래도 그림은 내 유일한 소통구이기도 해서 꾸준히 좋아했어. 지금도 그래. 그런데 영상 분야로 넘어오면서 예전보다는 자주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이 내게 주는 희열감 같은 게 있어.
_네가 예전에는 누가 네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게 재밌다고 했잖아.
_맞아, 그랬지.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바뀐 것 같아. 아니, 조금 더 오래전부터 바뀌었어.
_어떻게?
_그냥 난 내가 항상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해. 지금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만으로는 잘 정리가 안될 때가 많더라고. 그런데 그림에 '나'를 넣으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일 때고 있고, 현실의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있고.
_그럼 지금의 너를 담는구나. 어쩐지 뭔가 닮았어. 물고기 같이 생긴 게.
_전부 다 나를 그리는 건 아니지만....거의 대부분 나지.
_그러면 다 그리고 나면 기분이 어때?
_엄청 좋지도, 뿌듯하지도 않아. 사실 나도 내가 왜 이걸 그리고 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거의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일 때가 더 많거든. 심지어 그리고 싶은 이미지나 행위가 잘 떠오르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뭔가를 그려내고 싶어서 새 하얀 백지에 이것저것 낙서를 해보기도 해. 그러다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괜히 김이 빠지고....마음이 심심하고....
_아, 나도 뜨개질할 때 좀 그런 것 같아. 나도 내가 이걸 왜 뜨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색깔별로 실을 주문하고 있고 어떤 모양으로 뜰지 영상을 찾아보고 있더라고. 결국엔 다 만들면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있고 말이지. 그래서 웃긴 건 내껀 하나도 없어.
_'아무 생각 없이 한다' 이게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생각을 평소에 너무 많이 해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거지. 나는 평소엔 산만하다가도 그림 그릴 때만큼은 딱 그것만 해. 뭔가 엄청 집중하고 있지. 마치 그런 거 있잖아, 어둡고 캄캄하고 긴 터널에 우연히 들어왔는 데 건너편에 작은 빛을 본거야. 그걸 보고 앞으로 계속 달려가기만 하는 거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뒤도 돌아볼 틈도 없이. 그래서 그냥 하게 돼. 계속.....
_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만든 뜨개질 실뭉치들은, 뭔가 내 고민들과 잡념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 동그랗게 만들고 나면 마주할 용기가 없으니 계속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_어쩌면 우린 모두 가끔은 집중할 게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 모든 감정들과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지급해줄 필요가 있어.
_맞아, 뜨개질 할 때는 그날 짜증났던 일들이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그래서 좋은 것 같아.
그래서 넌 오늘은 뭘 그렸는데?
_몰라, 나도 뭘 그린 지.
네가 제목 좀 붙여줘.
_오징어 아냐? 흐물 거리는데.
_요새 밤에 라디오를 듣거든. 그거 들고가면서 방황하는 나의 모습이야.
_방황하는 것 치고는 매우 여유로워보이고 행복해보이는 데.
_난 이제 자야겠어.
_오늘도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_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거지. 잘자
모두 잘자요.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