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계획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공부

by 여미


난 계획이 없어


요새 영어공부에 심하게 꽂혀서 매일 두 세시간씩 영어만을 위한 시간을 쏟는다. 누군가 요새 내 취미가 뭐냐고 하면 어학공부라고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요즘의 젊은 청년들에게 있어서 어학 공부란, 취업을 위한 공인 어학시험성적이 필요하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출국할 상황이 생겨서, 혹은 업무에 필요한 비즈니스적인 스킬이 필요해서 등등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것이지만, 나는 어떠한 계획이나 목표 따위도 없다. 단지 작년에 홀로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자존심에 극심한 스크래치를 받고서 의지에 불타올랐고 입국하자마자 수소문 끝에 제일 참여 강도가 높다고 소문난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또 다른 이유는 준비하고 있던 대학원에서 영어능력을 보았기에 겸사겸사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그때의 나는 정시퇴근이 가능한 계약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매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학원은 주 5일제였고,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안 해오면 그다음 단계의 수강을 신청하지 못했다. 숙제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는 숙제를 하다가 잠이 들고, 자잘한 쪽지시험을 준비하느라 온 신경이 그곳에 가 있었다. 작년 7월부터 약 5개월 동안 영어학원에서 안 하던 공부를 성실히 했더니 그 이후에는 어느 정도 기초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독학으로 진행 중이다. 나름 문법, 회화, 작문, 듣기 등 나만의 시간표를 짜서 학습을 꾸준히 진행되고는 있지만 사실상 아직도 외국인을 만나면 입도 몇 번 뻥긋 못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작문은 내가 좋아하는 영역이기에 영어로 작문을 하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고 재밌지만, 실제로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왜 그렇게 당황부터 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영어 테스트를 여러 번 신청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아는 단어들로 대충 문장을 만들었더니 나도 모르게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고작 책 한 권 출간했는데 직업을 작가라고 했으며, 주말에 특별한 약속도 없는데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정적이 두려워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격이다. 필리핀 언니는 멋지다는 감탄사를 반복하며 대화를 진전시키려고 했지만 내 심심한 리액션에 대화는 뚝뚝 끊겼다. 언제쯤 나는 진실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해질 수 있는 것인가. 외국인만 만나면 의도치 않게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다니.


언니, 미안해요. 난 아직 멀었어요. 조금 더 크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요.

후회와 실망만 남긴 채 전화영어는 환불했다.


안타깝게도 열심히 준비하던 대학원은 최종에서 탈락했다. 영어시험은 가까스로 통과한 것 같았으나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낙방이라니. 일주일 동안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무기력을 이겨내고 다시 하던 영어공부를 이어갔다. 나도 이걸 왜 하는지 모른다. 요새 왜 하는지 모르는데 하는 것들이 참 많이 늘어난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아도 영어 공부는 내 유일한 활력이다.


아직도 내 인생의 계획은 없고 목표는 없다. 장편 소설을 써보겠다는 소소한 목표말고는.

그래도 언젠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다가올지도 몰라.


내 계획은 계획이 없다... 는 것....쓱쓱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2탄에서 또 들려드릴게요. :)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