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Jan 18. 2020

소식 주의자

It is not enough to eat

햄버거, 라면, 피자, 치킨, 감자튀김


이번 주 내내 내가 먹은 것들이다. 얼마 전에도 의사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의식적으로 소식을 하면서 체중관리를 해야 하는데 까맣게 또 잊고 말았다. 이것은 모두 유튜브 때문이다. 내가 유튜브 세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두 달 남짓 되었을까. 누군가 내게 유튜브를 자주 보냐고 하면 생각나는 것은 한 두 개 정도, 그것도 어학 관련 채널 위주로만 시청한다고 했다. 나는 교육 목적으로만 유튜브를 찾았고,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내 취향을 알아서 분석해주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쩌다 유명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말았는데, 낄낄 대며 '이것 참 재밌군'하는 사이에 곧이어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몇 번 감상을 하고 메인 화면으로 다시 왔더니 또 다른 유튜버의 (내가 좋아할 만한) 카테고리의 영상물들이 줄지어서 재생해주길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외국인이 한국의 맛집을 탐방하며 맛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는 채널에 빠졌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패스트푸드가 그렇게 먹고 싶어 진다. 평소에는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짜고 자극적인 것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벌써 일주일 새에 두 번 연속으로 그것들을 사 먹고 있다.


소식 주의자


1년 사이에 14kg 정도 체중이 늘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던 체질은 어떻게 된 모양인지 먹은 만큼 찌는 체질로 변했다. '이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관리를 등한시했지만, 이제는 앞자리 숫자가 또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바지와 치마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옷을 다시 사야만 했다. 최근에 운동을 다시 끊고 꾸준히 하고는 있는데, 저녁을 굶고 운동을 가서 땀을 빼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져서 밥을 먹어야 하고, 그러다가 어제 또 햄버거를 먹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니 그날 나는 햄버거를 먹는 방송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먹은 햄버거로 인해 오늘 하루 종일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는 먹방 유튜브도 줄여나가야만 한다. 내 식욕은 그들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부터 저녁을 소식하기로 했다. 오후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모닝빵을 샀다. 같은 대학을 나온 친한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준 에어 프라이기로 빵을 따뜻하게 굽고, 딸기를 씻고 한라봉의 껍질을 벗겼다. 5분 정도 구우니,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빵이 되었다. 우유는 저지방 우유로 준비했다. 무슨 여행지에서 조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빵을 두 개 정도 뜯어먹고 과일과 우유를 곁들여 먹으니 금세 배가 불렀다.


가만, 배가 부를 때까지 먹으면 소식이 아닌 것인데?

지금까지 먹던 식습관에 비해서는 상당히 칼로리가 낮은 건강식을 먹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배가 왜 이리 든든한 것인지. 의사가 말하는 소식이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닐 텐데.


It is not enough to eat

먹기에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어야 성공인 것이겠지.

아니, 너무 적잖아? 이것으로 뭘 어떻게 하라고?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단 말이야!

이 생각이 들때 즈음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인데, 나는 지금 너무나 포만감이 든 상태이고, 행복하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매거진의 이전글 넌 계획이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