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Feb 16. 2020

지금 우리는

뻔한 이야기

너 요즘 글 쓰고 있어?


눈이 내리는 일요일 오후, 동네에서 오랜만에 대학 동기 Y를 만났다. 최근 회사에 다시 취업한 나에게 밥을 사준다고 했다. 


편입 동기였던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동갑인 데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Y를 처음 보자마자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풍기는 분위기가 차분해 보였고 상황에 따라 할 말도 잘할 것 같은 야무진 이미지였다. 그냥 나와 뭔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도 나도 학교에 다시 들어온 마음 가짐이 남 달맀기에 방학 때도 모여서 자체적으로 영화를 찍었고, 다른 동기들과 함께 모여 시나리오 스터디 모임도 만들었다. 둘이서 리더가 되어 주도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대학을 졸업을 한 이후에도, 우리는 시나리오를 계속 쓰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고 열심히 하면, 금방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도 나도 일을 하기 시작했고, 스터디도 작년을 끝으로 종료를 했다. 


결국 예술을 하려면, 노력도 노력이지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 도무지 집에서 혼자 글을 쓰는 것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많다고 해서 또 그 시간에 글만 쓰는 것도 아니었다. 몸이 편한 방향대로 움직이다 보니 하루를 낭비하고 있었고, 미래가 불안했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Y는 1년 동안 취업을 준비해서 석 달 전에 먼저 일을 시작했고, 나도 최근에 한 기업에 입사를 했다. 


우리는 연락만 닿으면 '요새 글 쓰고 있어?', '그게 뭔데? 먹는 건가?'라는 심심한 대화를 자주 한 것도 같은데, 만나서도 또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밥을 먹었냐는 안부인사 같은,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뒤이어 영화는 계속할 건지, 언제 할 건지, 만들고는 싶은 지, 소시지처럼 줄줄이 뻔한 질문이 따라온다. 사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기보다는  Y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내 마음 한쪽 구석에서 조금은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글쎄, 기회가 되면 만들고는 싶지

    

그는 본인이 영화를 제작하기보다는 좋은 영화를 발견해서 투자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한 봉준호 감독을 보며 정말 한 분야의 최고가 되려면, 어쩌면 인생을 전부 걸어도 모자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의 다짐은 두 가지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 그리고 큰 욕심을 버리는 것

벌써 서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직은 서른 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계획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세울 수 있는 거니까. 우선은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찾아보며 실천하기로 했다.   


오늘 Y와 떡볶이를 먹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요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영화 이야기는 없었다. 


눈이 내렸다.

우리는 말없이 흰 눈을 바라보았다. 


글 여미

커버 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Y는 말했다. 

야, 이렇게 눈 내리는 날 만나는 건 찐우정 아니냐? 


나는 대답했다.

미리 알았으면 오늘 안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식 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