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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y 26. 2021

요리를 한다는 것

행복해지고 있다는 의미

자취를 시작한 지 이제 곧 1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갓 지은 밥에 마른반찬 몇 개만 먹어도 맛있었고, 예쁜 식탁보에 요리한 음식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요리를 하는 일이 별로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거롭다는 것입니다. 1인분을 위해 필요한 양보다 넉넉한 재료를 사야 하고, 그렇게 하나 둘 사다 보면 밖에서 사 먹을 때만큼 비슷한 금액이 나올 때도 있으니까요. 또, 남은 재료를 잘 밀봉해서 보관한다고 할지라도 냉장고 상황을 깜빡 잊고 지내다 보면 신선도가 떨어진 재료들은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 또한 언젠가는 처리해야 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음식물도 제때 처리해야 하고, 어질러진 식탁도 정리해줘야만 합니다.


이제는 혼자 잘 차려서 맛있게 먹는 재미보다는 이런 수고들이 먼저 그려집니다. 그래서 밖에서 사 먹고 들어오거나, 포장된 음식을 집에서 먹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어차피 그 돈이 그 돈이다'라는 합리화로 요리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심지어 생일에 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끓여먹으라고 말린 미역과 소고기까지 밀봉해서 주셨는데 아직도 만들어먹지 않았고 지금은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굳이 날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그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라고 느껴졌으니까요.


요리를 한다는 것


오늘 출근을 하면서부터 토마토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먹고 싶어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거나, 집 근처 분식집에 들어갔을 텐데 오늘만큼은 왠지 요리가 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를 위해 한 끼를 잘 만들어서 먹어야겠다는 기분 좋은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회사 사람들한테도 오늘 나의 요리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고 다닐 정도로 소소한 일에 괜히 기대가 되고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운 좋게 칼퇴를 하고 폴짝폴짝 뛰어서 재료를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따라 재료를 손질하고 정리하는 일들이 전혀 번거롭지 않게 느껴지고, 오히려 신이 난 상태로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토마토소스 뚜껑이 안 열리는 바람에 살짝 실망할 뻔했지만, 오일 파스타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를 위해 저녁을 만드는 일 자체가 그저 좋았습니다.

행복해지고 있다는 의미


요리를 한다는 것은, 일상이 행복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이 풍족하니 요리를 하는 일에도 정성스럽게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가운 마음에서는 도저히 무언가에 정성을 쏟을 힘이 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의 나는 꽤나 행복한 하루를 보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그날은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요리를 한다는 것

글 여미

yeoulhan@nate.com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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