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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Jul 11. 2021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도 작은 일에 삐죽거리고 모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도 금세 욕심을 부리고 있다. 매일 후회와 다짐 속에서 살지만, 지켜지는 것은 별로 없다. 복잡한 생각에 잠 못 이루다가 어설프게 눈을 감고 어느새 아침이 다가온다.      


이럴 때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깰 때가 가장 행복하다. 비는 내 마음의 청소기 같은 존재다. 비가 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불안과 걱정들이 시냇물 떠내려가듯이 멀어져 가고 내 마음에는 잔잔한 평화가 찾아온다. 흐린 하늘 때문에 어둑해진 그늘과 베개에 묻은 촉촉한 감촉, 물 먹은 흙냄새도 산뜻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비가 내림으로써 찾아오는 환경적인 변화를 더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늘진 침대에 앉아 흙냄새가 묻은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아무런 일정이 없었던 텅 빈 시간들을 비를 즐기는 나의 시간들로 채운다. 벽돌처럼 닫아두었던 마음들이 말랑 말랑한 젤리가 될 때까지 차분하게 비를 맞이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뭘 딱히 하지 않아도 무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음악도 평소보다 더 달게 들리고, 뜨끈한 국물도 빗소리라는 조미료가 더해지니 세상 깊은 맛이 난다.    

 

비가 내린 후 미끌미끌해진 바닥을 걷는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을 머금고 오늘도 출근을 한다. 비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았겠지만, 한없이 밑으로 내려갔던 내 마음의 온도는 적당히 미지근하게 맞춰졌다고, 그로 인해 나는 슬픔을 오랫동안 품고 있지 않고 미지근한듯 차분히 살아갈 수 있는 거라 안도하며 다음 비를 기다려본다. 



글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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