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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Jul 25. 2021

나를 사랑하는 만큼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싫어하는 것


청소가 너무 싫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즈음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는 있지만, 습관적으로 정리정돈을 안 하다 보니 하루 이틀만 지나도 바닥에는 머리카락 투성이고, 설거지는 쌓여있고, 분리수거는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고, 빨래 건조대에는 구운 오징어들처럼 바싹 말려진 옷감들이 뒤집어져있다. 한마디로 그냥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나의 집을 쳐다보며 '그래도 언젠간 청소를 해야만 한다'라는 압력이 가해졌을 때, 그 불편한 순간을 경험하는 게 싫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하기


청소를 시작할 때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 싫어하는 일을 할 때, 나를 사랑하는 만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청소 같은 경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할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내가 어지럽힌 거라 할 말이 없지만) 지저분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하고, 단시간 안에 할 수 없는 일이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린 자세에서 무언가를 차근차근히 만지작 거리고 있는 모양새가 답답하고 지루해서 싫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생명이 위험하다), 어차피 싫어하는 일을 언젠가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애정을 갖고 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해보았다.


어떤 면에서는 바보같이 굴고, 서툰 면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고 후회도 많이 하는  자신이 싫을 때도 분명 있지만, 기본 적으로 매일 좋아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적당히 잘할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혼자서도 꿋꿋하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고, 체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꾸준히 운동 모임에 나가고 있고,   약속하면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있는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고, 나를 지지해주고 아껴주시는 부모님이 계신다. 종종 괴로운 일도 있고  풀리지 않은 일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대체로 호의적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종종 밖에서는 나와  삶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마음  구석에는 좋은 일도 분명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아무도 모르게 부여잡고 있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려운 , 해결할  없는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편이며 지금도, 앞으로도 현재 놓인  삶을,  자신을 사랑해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청소를 시작할 때만큼은 나를 사랑하는 만큼 하자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 나아지지기는 개뿔, 여전히 하기 싫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 정도는 해보기로 했다.



글 여미

yeoulhan@nate.com


싫어하는 일,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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